11월. 무심히 시린 소리, [still]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아름다운 멍에 치이는 순간이 끼어들 때가 있다. 아무리 해가 맑아도 곧 색색가지 물로 젖어 나올 것 같은 차가운 11월의 붉고 노란 타원의 나뭇잎들 그 처절한 타오름이 그렇고, 어떤 표정도 없이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있을 때의 어여쁜 아이 표정이 그렇고, 무명의 무대에서 자신을 가릴 만한 걸 다 놓쳐버리고 제 자신을 다해 악기가 되어 연주만 해버리고 있는 무명의 뮤지션을 보게 되면 그렇다. 그보다 훨씬 무욕으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는 만났거나 또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가을을 스무 번이나 서른 번 이상 겪어본 사람은 아는 멍이 하나 더 있다. 무욕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나서 그것 그대로 느낄 수가 없는 무감각병에 처했을 때의 그 막막한 멍에 대해.
자체로 아름다운 멍의 느낌이며 그것을 느끼기 힘들어진 막막함을 가졌을 때 아주 조금씩 천천히 기어이 막을 찢어주는 사람이 뮤지션이면 세상은 아주 무수한 빛을 가졌더라도 아름다운 무욕의 빛 하나를 더 가지므로 한 번 더 아름다울 것이다.
무욕의 아름다운 물방울 하나를 보았을 때와 같이. 그는 알아본 사람의 눈에 가슴에 그런 사람이고 사람이기 보다 감성이고 그렇게 음악적 존재다. 그가 연주하는 모습에는 종종 무아가 보인다. 음악과 함께 음악인 사람이 음악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그 뒤 모습에도 종종 무욕이 보인다. 그런 음악인, 정아랑이 자신도 모르게 보여주는 세계를 그가 내보이는 [still]이라는 곡으로 들여다보면 종종 어떤 아름다움이 11월의 눈물 나게 아름다운 낙엽으로 스윽 떨어져 내리는 걸 보게 될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