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를 동경하던 소년의 오케스트라 -
[MOBAN]의 첫번째 EP앨범 ‘TRI-PLANET’
질량중심을 행성 외부에 두고 서로를 공전하는 세 천체를 가리키는 삼중행성, ‘TRI-PLANET’. 경험적으로 발견되진 않았지만 이론적으론 실존 가능한 상상 속의 행성계이다. 질량중심이 특정 행성에 있지 않은 덕분에, 세 천체는 동등한 포지션을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프론트맨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소리를 충실히 발휘함으로써 궁극적 합일을 추구하는 [모반]의 음악적 모토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모반]은 키보드/신디사이저/보컬 이형빈, 베이스/보컬 이현우, 드럼 조광희로 이루어진 3인조 포스트록 밴드이다. [모반]의 음악은 한 곡당 7-8분 내지는 10분에 이르는 서사를 가지고, 각 테마에 걸맞는 또렷한 기승전결과 탄탄한 구조주의 작곡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록에 가까운 드럼연주와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공감각적 사운드, 예상을 뒤엎는 전개 속에서 재즈의 요소가 가미된 피아노 연주는 이들의 음악이 포스트록의 관용적 어법에서 유연하게 탈피했음을 알려준다.
앨범명 ‘TRI-PLANET’과 커버디자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모반]의 음악은 우주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초점은 우주보단 인간에게 맞춰져 있다. 우주는 단지 ‘종교적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특수성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성질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새로운 모험에 대한 상상, 우주를 지배하는 질서에 대한 호기심,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대한 고민 등이 주된 음악적 재료로 활용되곤 한다. 즉, 외부세계로서의 우주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단 인간의 내면세계를 거울삼아 표현하고자 했다.
- 곡 소개 -
타이틀 곡인 ‘Nest’는 새의 둥지로 상징되는 억압적 환경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존재가 비로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해방을 향해 날아가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이것은 ‘유토피아를 찾아 구원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앨범패키지에 포함돼 있다. 타이틀 곡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트랙의 포문을 여는 ‘Turn on the switch’가 있다. 앞으로의 모험을 이끌어갈 생명의 탄생과 의식의 각성을 알리는 순간을 표현하는 intro다.
‘Back through the wormhole’은 앨범명인 ‘TRI-PLANET’과 마찬가지로, 이론상의 실존을 가늠하고 있는 웜홀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원을 초월하는 가상의 터널’을 통한 공간여행을 상상하며 만들어졌다. 짧고 단순한 리프가 반복과 변화를 통해 차근차근 쌓이고, 신디사이저를 활용해 빈자리를 메꾸며 공간감을 더한 연주는 5/4, 3/4, 6/8박 등 다채로운 리듬의 변주와 어우러져 독창적인 그루브를 생성해낸다.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점층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고, 생성된 구조들은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 ‘낯설지만 불편하지 않은’ 다이내믹을 이끌어낸다.
‘Toad’는 두꺼비 구전민요를 몽롱한 아르페지오 신디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전자음악과 펑크가 결합된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시킨 ‘영웅찬양곡’이다. ‘작은 머리에 the southpole, 넓은 자리에 the sinkhole’ 이라는 단 두 줄의 가사로 이루어진 ‘Sin’은 인간의 죄책감에 대한 의식과 속죄로의 감정변화를 풀어낸 곡이다. 전반적으로 두 개의 테마가 샌드위치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5/4, 4/4을 활용한 리듬의 변주와 오르간 엠비언트는 긴장감을 수축, 이완시키며 인간 내면의 정서를 적절히 표현해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