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로서 내는 첫 번째 정규앨범 [새로운 마을]은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들을 노래한 포크 음반이다. 내가 불러왔던 노래들의 수확이기도 하다.
‘Letter to Yoko’는 헤어진 지 5년된 전 여자친구에 관한 노래다. 나의 첫사랑이기도 한 그녀는 내게 차인 후 10년 전의 첫사랑과 다시 만나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나는 참으로 못난 조연이 되었다.
‘서울 구경’은 2014년도에 세션맨으로서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지은 노래이다. 서울은 분명 내가 사는 촌보다 훨씬 설레이고 재미난 곳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그렇지 않은 면들을 노래해보았다.
‘새로운 마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이 노래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그리움 찾아 묻힌 죽은 해골들, 아 내 몸 속에 해골 또한 있지 않은가’이다. 여기서 해골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분명히 가며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 인물들을 뜻하는 시어다. 분명 이 얄팍한 시대 안에서도 우리의 이기심보다 더 깊은 곳에는 해골 같은 것이 있다. 그리움 찾아서 자발적으로 죽음으로 들어가는 해골처럼 살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일깨워 주었던 스승들 그리고 현재 나의 동료들을 위한 찬가이다. ‘강,강,강 건너서 님이 가시네 그 님이 가는 사연 누가 알겠오’는 절망적인 외로움을 전달해주지만 ‘밥을 짓는 연기들은 님을 감싸고 외로운 허수아비 사라져 버렸네’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밥을 짓는 행위,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착실히 하는 것이다.
‘상남동 노래’는 내가 혼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만든 노래다. 그때가 2013년 겨울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창원의 유흥가들을 떠올려 보면 만들어본 노래다. 쓸쓸한 풍경을 만들어 보았다.
‘하늘의 길’은 명곡이라 할 수 있다. 가사들이 간이하면서도 하나하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가스펠의 Lord를 동양적 의미의 ‘하늘’로 대치 시켜 보았다. 하늘의 이치와 인심의 대비를 둘러 말함 없이 그대로 표현하였다. 이 노래는 역사에 남을 것 같다. 연진, 봉우리, 멋진 두 뮤지션이 코러스를 도와주었다.
‘피와 살’의 경우는 이렇다. 감상적인 남자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만 술 먹고 밤길을 걸으면 세상이 내를 몰라주는 것 같으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안도감을 느껴본다. 그럴 땐 잠이 잘 온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 이런 못남 외로움에 빠지는 것은 참 못난 일이다.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다.
‘모자’도 내가 아끼는 노래다. 현란한 말로 멋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사사롭게 자기 이익만 탐내길 좋아하는 내 주변의 모든 사이비를 비난하는 노래다. 오해를 살 것같아 가사에 대한 사족을 붙이자면, ‘썩어빠질 놈의 정치 해 보았자, 지 자지 하나도 간수 못하네’에서의 자지의 의미는 방향성 없는 욕망 그 자체를 비꼰 것이다. ‘썩어 빠질 놈의 사랑 해 보았자, 세상의 구멍들은 다 똑같다네’는 사랑 타령하는 남자들일수록 이 여자 저 여자 막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는 경우를 일반적으로 봐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멍의 의미는 남자의 욕구 대상물로 구멍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모든 여자에게는 남자가 범접할 수 없는 그 영원한 여성성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혼? 혹은 여성의 이데아다. 그것은 보편적인 여성성에 대한 찬양이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그녀가 그녀일 수 있도록 하는 그 무엇은 모든 여자에게 각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얼굴이 어떻고 몸이 어떻고 하는 유물론적 견해와는 다르지만 몸동작 하나, 숨소리 하나, 미소 하나에서 다 캣취 될 수 있는 것이다.) ‘다 똑같다네’라고 하는 말은 바로 그 보편성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보편적 여성성을 모르는 놈들은 항상 이 구멍이 다를까? 저 구멍이 다를까? 헤매고 다니며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꾸미고 미화시키려고 한다. 드라마 쓰는 놈들. 난 지금도 사랑에 빠져있고 사랑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놈들의 사랑은 전혀 이해 못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구멍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찬양한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죽어도 못 따라 간다.
‘신안동 크로스로드’는 대학3학년시절에 만든 노래인데 내가 다닌 대학이 있던 동네 이름이 신안동이며 거기에 진짜 4거리가 있었다. 청춘의 방황기에서 길을 찾아 떠나는 노래다. 불교의 심우도를 보고 만들었다.
‘Be careful’은 더 이상 즐거울 것도 없는 우리 일상을 노래했다. 아주 진부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높은 자극 수준에 중독되어가고 있다. 진실, 거짓을 외치는 자들 모두… 우리는 우리 주둥이로서만 진실이다, 거짓이다 주장하지만 우리들의 생활양식에서는 이미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는 시대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라는 말의 진실한 측면이다. 나는 아직 많이 살아보진 못했지만 20년전의 인간이 지금보다는 좀 더 정상이었던 것 같다.
‘거창에서 내려오는 길’은 대학 밴드 하던 시절에 거창에서 공연을 하고 진주로 내려오는 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술도 많이 마시고 해서 지치고 허무한 마음, 집에 가면 잔소리들을 것 같은 불안함(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의 걱정이 걱정되는 마음) 그런 것들을 노래로 표현해 본 것이다.
‘축제’는 언젠가 MAMA페스티발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보고 만들었다. 거기 나오는 한국 사람들은 다들 미국인들 처럼 보였고 이상한 서양인들이 나와서 ‘짹짹’거리면서 노래를 했다. 그 노래를 알고 보니 ‘What the fox say’라는 대단히 유행한 노래였다. 나는 청소기를 돌리면서 보고 있었는데 어떤 가수의 가사 중에 “멈추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 두 가지를 재료로 하여 상황을 설정했다.
어떤 축제를 여는 술집의 예쁜 여자 바텐더가 주인공이 고독한 남자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1절은 바텐더가 좀 놀아 보아라고 말하는 것이고 2절은 남자가 술에 취한 뒤에 그 바텐더가 약간 돌변하여 진실을 얘기하는 장면을 만들어 본 것이다.
‘Full of peace, 함안’은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관한 노래다. 마산과 진주 사이에 함안이 있는데 한자로 함은 ‘가득하다’의 뜻이 있고 안은 ‘편안할’ 안이다. 영어로 풀면 full of peace가 되는 것이다. 함안의 ‘촌’스러움이 잘 녹아 있는 멜로디와 가사다. 가사 하나하나에는 함안이 품고 있는 것이 다 안배되어 있으나 길어질 것 같으므로 생략한다.
마지막 자평을 붙이면, 나는 근래에 함안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고속 버스에서 ‘논’을 많이 보았다. 논, 그것이야말로 엄마다. 우리 엄마들은 현대사에서 소외 계층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다 먹여 살리셨다. 우리의 1년은 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벼가 자라고 베이는 것에 있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쓸쓸하고 해진 논을 보면 버려진 어머니들이 생각나고 나는 많이 울었다. 또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현대사를 아니 생각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 나는 논을 닮아야겠다. 안 죽고 살아온 우리 엄마를 닮아야겠다. 그것이 ‘새로운 마을’의 노래와 앨범 디자인에 대한 해석적 의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