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된 연둣빛 기도. '조동희' [사계절]
어릴 적 동네에 완력으로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골목대장 아이가 있었다. 힘으로는 꼼짝을 못하던 아이들은 어느 날 작정한 듯이 골목대장을 빙 둘러싸고서는, 그 아이와 상관도 없는 무의미한 가사가 담긴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희한한 것은 결과였다. 아이들에게는 천하무적처럼 보이던 골목대장의 낯빛이 점점 붉어지더니,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집으로 가버렸던 것이다. 울음을 터뜨린 그 아이는 더 이상 골목대장의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 노래의 힘은 일정한 반복이 만드는 음악적 패턴이 무의미한 가사에 발생시킨 주술의 효과에서 나온다.
노래가 된 말들이 있다. 음악이 된 말들은 대기 중에 바람처럼 흩날리고, 계절의 순환처럼 우리 감각에 닿아서 지금 세상의 표면을 덮고 있는 절망과 두려움과 무기력이 유일한 시간이 아님을 일깨운다. 어떤 새로운 것, 설렘, 다른 시간의 가능성에 대한 미세한 감각은 귀에서 시작되지만, 우리 가슴을 만지고 몸을 에워싼 후, 결국은 우리 몸 전체에 스미고 우리를 위무하며 우리를 숨쉬게 한다.
단지 연둣빛 새싹에 불과한 그 느낌이 우리에게 지금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을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우리 안에 부드럽고 관대하며 생생한 용기가 존재함을 일깨운다. 만일 노래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신비한 주술의 효과가 아니라, 간절하여 바람처럼 가벼운 선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기도의 말들이 결국 이겨낸 우리 안의 무력감, 일상의 중력일 것이다. 이때 노래는 어떤 절박한 비원 (悲願) 을 담고 있는 한 편의 시와 다르지 않다. 노래가 된 기도는 시가 된 기도가 그러하듯이, 불확실한 미래의 희망을 선언한다기보다는 현재의 절망울 수락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중심으로 한발 한발 차분히 전진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의 [사계절] 은 다른 시간을 향한 기도다. 여기에서 "사계절" 은 수동적이고 나태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환기하고 새로운 감수성을 촉구한다. 단조로 시작된 음악이 장조로 전환되고 점차 풍부하게 증폭되는 화성 구조를 통해,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상처받은 개인의 호소가 보편적인 삶의 연대로 확장되고,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삶으로 이어지길 염원하는 기도를 읽을 수 있다. 이때 작가가 의지하는 것은 신비한 주술의 힘이 아니라, 그대 마음속에 새싹이고 꽃잎이다. 그것을 잊지 않고 개화시켜 ‘당신의 노래’로 만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까메오처럼 곡의 후반에 예상치 않게 등장하는 '한대수' 의 피처링은 이 노래를 듣는 놀라운 재미이며 청자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포크 싱어송라이터 와 결합한 1세대 포크 레전드를 통해, 우리는 모든 순결한 노래들에 담긴 자유와 희망이란 세대를 초월한 보편적 기도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우리 시대가 그러한 연대의 노래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동희' 의 좋은 파트너 '박용준' 의 편곡과 프로그래밍, 기획사 '푸른곰팡이' 가 함께 만든 수준 높은 사운드는 이 노래를 어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완성도 있는 간결한 서사시를 연상케한다. - 2016년 01월 '함돈균' (문학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