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역사서가 아니다.
‘전산실의 청개구리’가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전산실’로 옮겨다 놓은 것이라면, 그들을 ‘디지털 시대의 염상섭’이라 바꿔 부르는 것에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1963년에 사망한 소설가 염상섭이 과거의 서사이고 디지털이 현재의 어법이라 보면,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콘텐츠를 현재의 어법으로 풀어내 보겠다는 것이다.
본작 『조선왕조 오백년』은 어디까지나 대중가요 음반이고, ‘전산실의 청개구리’는 대중음악을 창작하는 집단이다. 다소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앨범은 본질적으로 역사가가 기술한 역사서보다는 중세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던 영웅담이나 우리네 옛 광대놀음, 혹은 텔레비전 대하사극과 더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앨범을 통해 이들은 「위화도」에서 회군 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 건국 세력에게 공감하거나, 단종의 ‘자규시’를 인용하며 원치 않는 죽음을 맞는 패자의 감정에 몰입한다. 「박테리아」와 「정치의 기술」에서는 이러한 몰입이 더욱 극대화 되어 조선의 붕당정치를 통하여 현재의 정치, 사회상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앨범의 타이틀곡 「르네상스」는 너무 일찍 찾아온 조선왕조의 중흥기와 그것의 허무하리만치 이른 몰락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을 담은 곡이다. 이러한 부침의 양상은 레게와 헤비니스 록을 오가며 가벼워지고 무거워지는 사운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임진왜란」에서는 조선조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이 전쟁을 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궁을 버리고 도망가며 명나라에 기대고자 하는 선조의 비굴한 모습에 분노 섞인 조롱을 퍼붓는다. 분노를 퍼붓는 데에는 역시 로큰롤만한 것이 없고, 그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고 숨기만 하는 선조의 모습은 후반부의 스윙 리듬으로 표현해냈다.
「강화도」를 통해서 이들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옹호하고자 하는 시각도 드러낸다. 대원군이 가졌을 법한 애환을 녹여내기 위해 가져 온 것은 트로트를 연상케하는 멜로디. 그 멜로디를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잦아들고, 마지막 트랙인 「나선」으로 불안하게 정리되는 이 앨범의 메시지는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이 앨범은 역사서가 아니라 ‘대중음악(가요)’ 앨범이다. 가요를 굳이 무겁고 진지하게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역사’라는 인문과, ‘프로그래밍’이라는 기술과, ‘음악’이라는 예술을 가지고 자유롭게 빚어내는 그들의 새롭고 재기 발랄한 시도를 그저 재미있게 즐기면 될 것이다.
강백수(시인, 싱어송라이터)
* 전산실의 청개구리는 ‘이지리스닝’과 ‘하이브리드’를 표방하는 2인조 레게 밴드이다. 약 2년 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그들의 첫 앨범 ‘조선왕조 오백년’은 2014년 4월 19일 한양대학교에서 있었던 문래당 연구원 김홍백 선생의 동명의 강의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컨셉트 앨범이다. 앨범을 통해 이들은 조선조 500년의 역사를 음악으로써 장쾌하게 표현해내었고, 시와, 정민아 등 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사운드의 풍성함까지 더하고자 하였다.
* 디지털 부클릿 URL : www.jeonsansil.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