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소길 4화] "낡은 앞치마"
노래 - 장필순
작사 - 장필순
작곡 - 박용준
편곡 - 조동익
Piano, Organ - 박용준
Cello - 민영애
SynthWork & Electronics - 조동익
Mixing, Mastering - 조동익
아트워크 - 천영배
캘리그라피-윤소라
겨울, 추운 바람 부는 밤일 수 밖에 없던 날이었다. 믿을 수 없는 갑작스런 상실은 모든 계절을 한 겨울로 돌려놓았다. 그 해 겨울, 연말의 따뜻한 파티를 기다리던 우리들은 그 온기의 중심을 예고 없이 잃게 되었다. 음악공동체 푸른곰팡이의 알려진 '어른'이 '조동진'이었다면, 덜 알려진 우리만의 어른은 '조동진'의 아내, 모두에게 '형수님'이라 불리던 분이었다. 여느 해처럼, 풍성하고 따뜻한 식탁 앞으로 모두를 모으려고 계획하던 그 겨울, '형수님'은 갑자기 떠나버리셨다. 그 분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받아 보았던, 그 분과 수수하면서도 다정한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모두는 깊은 슬픔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언제든 이런 갑작스럽고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상실이겠지만, 이는 또한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상실이기도 하다. 그녀의 '낡은 앞치마'처럼 늘 거기에 그와 함께 무심하게 놓였던 물건이 문득 그의 남겨진 모든 것인양 묵직한 무게로 돌변한다. 낡은 앞치마 주머니 속 타이레놀 두 알이 이야기하는 통증, 부엌 한 켠에 모아둔 레시피가 말하는 섬세한 계획, 버리지 않은 편지와 메모에 담긴 다정한 마음들 같은 것이 한 사람의 일부이자 전부를 증거한다.
커다란 상실의 애도는 그래서 이렇게 조용하고 작은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라도 하나가 사라지자 전부가 사라진 듯 텅 비어버리는 그 곳처럼 '박용준'의 건반이 조용히 비워내는 공백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의심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있는 바람이 불 것이다. 펄럭임이 보여주는 바람의 모습처럼, 남겨진 물건들이... 노래들이... 펄럭이며 무언가를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다.
상실은 참혹하지만 그만큼 분명한 온기를 재현해내는 것은 부드럽고 느리고 낮은 소리다. 첼로와 '장필순'의 낮은 음성은 심심한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조동익'은 헐겁게 채워지는 음, 조용히 삐걱대는 공간을 그려낸다. 조용히 돋아나는 소름처럼 문득 만나게 될 슬픔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이다. 앞치마를, 연필 한 자루를, 슬리퍼 한 켤레를, 고정된 라디오 채널을 쓸어내리듯 정성 들여 애도하는 마음이 커다란 상실도, 깊은 슬픔도 쓰다듬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쓰다듬어 주어야 할 마음을 도처에서 만나고 있다. 낮은 음성이 쓸어내리는 풍경을 되풀이해서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 2016년03월에 기린그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