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빌어먹을 노래들]
1. 용을 잡는 기술의 달인
용인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만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노래의 시작이었다. 마침 용인이라 '무용지물'이란 말이 떠올랐다. 내 처지의 서정적 묘사였다. 참고로 서정은 사물 혹은 개념과 자신의 상태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좀 더 생각했다. 도룡지기(屠龍之技)가 떠올랐다. 조금 더 시각적 이미지가 있는 표현이었다. 용을 잡는 기술, 수요도 없는데 공급하겠다고 나서는 기술, 대단한 기술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쓸모없는 기술.... 그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나는 용을 잡는 기술의 달인이었다. 내 음악적 처지를 잘 표현해줄 이야기였다. 그래서 만들었다.
어쩌겠는가? 쎈 척 해도 안 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걸하듯 나의 유용성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안 먹혀 들어가면 "다음에는 꼭 사 주세요~!"하고 능숙한 영업사원 같은 미소를 날린 후 돌아서서 "눈이 삔 네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뭐야?"하고 욕을 할 수밖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빨간 뚜껑 한두 개 따서 얼큰하게 취하고, 이런 빌어먹을 현실은 개들에게나 주라고 허세를 부리고, 아줌마에게 윙크하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서 수치심을 추스르고 아직 남아있는 것들 마저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2. 아버지 묘의 풀을 베며
후배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만들었다. 음악을 한다고 아버지 속을 썩였던 후배가 아버지에게 "이런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빌어먹을 자식! 나가 뒤져라!"라는 말을 듣고 집에서 쫒겨났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후배가 아버지와 화해를 했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처를 해결하지 못 한 아들은 아버지의 묘를 찾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찾지 않던 아버지의 묘에 갈 때에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직시하게 되었거나, 현실과의 갈등,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을 넘어 비난 받아 흔들리는 자신감으로 위태위태한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하러, 혹은 위로를 구하러 갈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아버지의 묘는 잡초가 무성하다. 묘의 풀을 베는데, 땀이 흐른다. 잠시 쉬며 담배를 태운다. 아버지의 묘비를 본다. 아버지의 이름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 이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아버지를 회상한다. 애증이다. 증오가 더 많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고, 비난하며 발전만을 요구했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그렇게 분노하며 부정했건만, 이 세상은 아버지가 말씀하셨듯,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아버지의 묘를 어루만지며 노래가 시작된다. 잔디를 쓰다듬는 리듬이다.
당신을 미워했고, 원망했다고 고백한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불쌍하게 여기고 이해해주지 못 했냐고, 그래서 나를 이렇게 불안한 사람으로 만들었냐고, 인정받지 못 할까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타인을 신뢰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냐고 원망한다. 난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사실 믿고 싶다고, 믿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기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아버지의 음성은 아주 어릴 적, 아직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을 때,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버지가 불러주던 노래를 듣던 것뿐이다. 그 다음은 비난 뿐이었다. 부모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을 기억해내고, 재생할 수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들리지가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말해줘도 믿어지지 않기에 입력이 안 된다. 들을 수가 없다.
그런 노래다..... 사랑을 믿을 수 있어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에, 뒤늦게 사랑을 애원하는 노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