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과 선원들' [국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명예도 없다
- 단편선
여름과 가을 사이에 제주에 종종 내려갔다. 그 사이에 몇 곡을 쓰고 또 몇 곡을 버렸다. 버리고 나니 이 곡이 남았다. 그것을 2016년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 내게 되었다. 곡을 발표하는 일은 언제나 기쁘다.
제주에선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 그러니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주로 만났다. 그들에게서 4.3 사건에 대해 들었다. 4.3 사건에 관련한 공식적인 기록들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런 공식적인 기록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한 개인으로서 겪은 몇 년 간의 지옥 같은 삶,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말해주었다. 자신의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떼거지로 몰살당하던 그 몇 년 간을 지옥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그곳에는 자유주의도,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근대도 있거나 말거나 했다. 그보다는 원시적인 살육과 통제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명예도 없다.
곡을 쓰면서, 제목을 어떻게 붙일지 고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통은 어느 정도 곡이 마무리 될 시점에 아, 이 곡의 제목은 이것이구나, 하고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국가 National Anthem"이라는 제목이 떠올랐고, 바로 그것으로 정했다. 붙이고 보니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꿈을 꾸는데 지극히 어둡고 좁았다. 멀리 보이는 한 점을 향해 무언가 검은 것들이 잔뜩 빨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 그 검은 것들이 아마 그 개개인의 기억들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정치적인 것을 음악과 직접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다른 층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이 곧 정치라거나, 음악을 통해 정치에 기여할 수 있다거나 하는 주장들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음악은 음악이다. 그러나 제목이 "국가 National Anthem"인 곡을 발표하면서 이렇게만 쓰는 것은 뭔가 감추는 것이 있거나 야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 테다. 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과 그로 말미암아 비참하고 비루한, 때로는 '빌어먹을' 삶을 살게 된 개인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곡의 가사에는 한국에서 일어난 몇몇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은유가 포함되어있다. 그것을 부러 아니라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이 곡을 완성하고, 레코딩을 하기 위해 리허설을 하는 도중 시위가 시작되었다. 몇 만의 인원으로 시작된 시위는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 십 만, 백 만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우리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명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 시위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국가가 개개인을 불행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믹싱으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며 갓 완성된 음악의 마지막 시퀀스를 듣는데 갑자기 올림픽에서 성화를 봉송하러 달려가는 마지막 주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이 너무 뜬금없어서 웃었다. 하지만 웃긴 것은 웃긴 것이고, 떠오른 것은 떠오른 것이다.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 같은 마음으로, 달려갔으면 한다. 그리고 확, 타올랐으면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