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겸 아마추어 문화 독설가 '송윤재' 의 음악팡팡!
본 글은 질질 끄는 서술 방식과 궤변으로 가득찬 글임을 명시함.
2016년이 시작한 지도 벌써 절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남은 일은 내년이 오기를 바라면서 설렘을 간직하는 일만이 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점점 무르익어가는 저 뜨거운 태양 아래 태양만큼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더위를 잊을만큼 알찬 브런치를 곁들이며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있었다. 피아노의 선율이 나의 고막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던 그 순간, 집중을 흐트리는 휴대폰 진동. 다름 아닌 3인조 듣보 밴드 '홍범서' 의 신곡 평가 요청이었다. 차이콥스키와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던 내가 듣보에 불과한 '홍범서' 의 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요청을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입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상이 존재하지만, 필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종종 복권을 사서 당첨되는 흐뭇한 상상을 한다. 그러면서 복권을 사기 위해 명당 간판이 붙어있는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문득 나에게는 복권을 살 돈 조차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상상은 종료되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야기하자면 더 길지만, 그런 자리는 아닌 만큼 이쯤에서 사설은 관두도록 하겠다. 아무튼 내가 펼친 사설이므로 급하게 이 사설을 마무리하자면, 이것이 전국의 모든 입금하지 않은 이천 만 채무자들 (수치적 근거 없음) 이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되는 배경이다.
아마추어의 향기가 물씬 풍기던 '홍범서' 의 데뷔 앨범인 [은퇴앨범] 에 수록된 곡들은 제법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이번 "입금해" 라는 새로운 곡은 제법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하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캐치한 리듬과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흥얼거리면서 이 글을 쓴다). 어깨가 절로 들썩이게 되는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입금을 받지 못한 채권자의 깊은 한 (恨) 이 담긴 보컬의 절규다. 한국적인 정서로 대표되는 한과 프로그레시브한 과감한 세션의 조화는 마치 파리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국인 쉐프가 접시에 담아낸 퓨전음식과 같이 절묘하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음악의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근본 없는 밴드의 음악을 무슨 음악이다라고 구분 짓고 싶지 않다. 내가 음악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건 비밀이다. 그리고 '홍범서' 가 딱히 특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 역시 비밀이다.
하지만, "입금해" 가 담아내는 가치는 흥겨운 멜로디와 보컬이 들려주는 무게감과는 다르게 사뭇 중량감이 느껴진다. "입금해" 의 주제는 한 마디로 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20세기 영국이 낳은 문호 '그레이엄 그린' 은 신뢰 없이 삶을 견뎌내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최악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 약속의 가치가 점점 빛바래는 것이 안타까운 요즘의 세태이다. 우리 사회는 약속 지키는 사회일까? '홍범서' 는 새로운 싱글 [입금해] 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신뢰의 부재와 투사처럼 정면으로 대결하고자 한다.
말 못할 고민 (그것은 채권자-채무자 간의 관계의 특수성, 채무자의 사정, 동정심 등) 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전국의 사천만 채권자들 (수치적 근거 없음) 에게는 이처럼 시원한 곡이 또 있을까? 뜨거운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날 차가운 수영장 혹은 바닷물에 뛰어드는 느낌을 단지 귀를 통해 느낄 수 있을 법하다면, 굳이 온 몸의 피부가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지 않아도 그에 버금가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면, 입수보다는 이 노래를 듣는 편이 이득이 아니겠는가?
채무자 입장에서는 제법 당혹스러울 만도 하고, 모멸감, 수치심 등을 느낄 수도 있을 공격적인 음악이 될 수도 있지만, 믿고 빌려준 채권자의 발등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전국의 이천만 채무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대표해 위대한 소설의 한 구절을 빌리며 곡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일단 필자는 빨리 입금하도록 하겠다.
글: '송윤재', 취준생 겸 아마추어 만물 분석가 겸 아마추어 문화 평론가 겸 비공식 전국 이천만 채무자 대표 / 무소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