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언제든 버려질 준비가 되어야만 하네”
처음 세션 제안을 받고 들어본 데모 중 유독 마음에 걸렸던 ‘청춘’의 가사 한 구절이다. 이제는 비록 팀 내부의 시선으로 많은 것들을 보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지만 내가 이들과 함께하기 전 외부인으로서 이 가사를 마주한 순간은 그동안 밴드가 걸어온 기나긴 여정이 그려진 처연한 울림으로 기억된다.
처음 다브다를 마주한 2013년 겨울 압구정의 한 클럽의 관객석은 나 같은 지인 관객 몇 명과 클럽 관계자들뿐이었고, 다른 팀들의 공연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밴드들도 관객만큼 특별할 것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찰나 거의 끝 순서였던 다브다의 공연이 시작되자 내게 떠오른 감상은 딱 하나였다.
‘이 팀을 내가 왜 몰랐지?’
급이 다르다고 느껴질 만큼 정교하면서도 본능적인 라이브는 그날의 라인업과 장소가 민망해질 만큼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신곡이라 소개된 몇 곡은 당장에라도 졸라서 앨범을 내놓으라 할만한 신선한 짜임새와 사운드였다. 그날 이후 나 역시 틈틈이 밴드생활을 하며 다브다의 행보를 주시하게 되었지만, 멤버들의 탈퇴 혹은 군입대라는 이 씬에서는 유난히 반복되는 좌절의 클리셰가 다브다에게도 치명타를 줬다. 특히 기타 멤버의 꾸준한 교체는 점차 밴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듯했고 밴드의 주요 활동 근거지였던 클럽 바다비 마저 문을 닫게 되면서 밴드의 소식은 더욱 뜸해졌다. 그렇게 근 2년이라는 침묵이 지속되는 동안 나 역시 비슷한 부침을 겪은 뒤 밴드 생활이 아닌 구직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으며 다브다의 소식 또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던 올해, 우연히 다브다 연습실이 위치한 성수동의 끝자락으로 내가 이사를 오게 되며 다시 한 번 다브다와의 연이 이어졌다. 잠잠하다 여겼던 2년 동안 밴드를 지켜온 김지애와 이승현은 새로운 기타리스트 이요셉을 영입, 이 앨범의 녹음으로 서서히 밴드의 재개를 알렸다. 그러나 예전만큼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멤버들의 상황이 남아 있었고 그 동안의 오랜 침묵을 메울만한 속도를 내기 위해서 기존 두 멤버가 계획적으로 완성시킨 곡들을 편곡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온라인상에 업로드 되어있는 기타&드럼 2인 구성의 데모버젼을 들어보면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텐데 개인적으로도 이 음원에 대해 미완성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그 동안 추구해온 밴드 포맷에 대한 의지와의 괴리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요셉의 합류 후 실로 오랜 시간 구심점이 되어 팀의 개성을 만들어낸 두 멤버의 안정감과 밴드 포맷의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그들은 이전까지 할 수 없었던, 혹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례차례 펼쳐놓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이 ‘저마다 섬’이며 그들 스스로는 과도기적 요소가 다분한 앨범이라고 설명하지만 시간이 지났을 때 분명 밴드의 인상을 확실히 각인시킨 존재증명의 결과물로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도대체 레퍼런스가 떠오르지 않는 이승현의 드럼은 비단 이 앨범뿐만 아니라 밴드 색 자체를 크게 좌우하고 있었는데, 무던히도 분주하면서도 철저히 계산적인 움직임은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존재감이었다. 물론 이 앨범에서도 그 무브먼트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왕년의 슈게이져 이요셉은 출신 성분을 증명하듯 곳곳에서 만화경과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멜로디메이커로서의 자질이다. 부유하는 리버브 속 끝없이 소리치는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앞으로 이요셉이 더 적극적으로 송메이킹에 가담했을 때 나머지 두 멤버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끝으로 김지애의 송라이팅에 대해서도 어렵고 거창한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단지 앨범의 가사집을 보며 노래들을 한 번 읊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정도로도 내가 받은 송라이팅에 대한 벅찬 감동은 충분히 설명될 것 같다.
특정 트랙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앨범은 사실 여름 발매를 계획으로 구성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자체제작이라는 시도와 그에 따라 발생한 무한 피드백, 세션 연주자의 영입과 동시 진행된 공연과 합 맞추기, 오버워치 발매 등으로 입동이 돼서야 앨범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앨범 자켓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영국 얼터너티브 밴드 Algernon Doll의 Omphalic 커버를 마음에 들어 한 멤버들의 검색 및 추적으로 작가 Angela Deane을 직접 섭외, 그녀의 작품 ‘Lido’를 실었다. 후반 작업 중 여러모로 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이 아트웍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으로 많지만, 이런 것들은 밴드끼리나 재밌을 이야기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끝으로 앨범 타이틀 ‘저마다 섬’은 평소 김지애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각자의 도피처를 상징한 서퍼의 가사 한 부분이다. 내게는 이 앨범과 밴드 다브다가 현재의 꽤 큰 도피처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이 앨범에 명백히 무임승차함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게 길고 지루한 글까지 쓰게 되었다. 아무쪼록 정규앨범까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앨범이니 어서 ‘저마다 섬’과 함께 하시길 바란다.
글: 배상언(베이스, 전 밴드 Voyeur 잡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