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트리오, 그리고 힘있는 밴드 '더티블렌드' [Sonatinen Lessons (소나티네 레슨)]
'더티블렌드'의 첫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멤버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강력한 사운드로 느꼈다. 긴장과 여유가 맞물린 음악을 구사하는 이 트리오는 전통의 빚을 지고 있지만 그 전통에서 탈피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들은 이제 막 왔지만 아주 멀리 갈, 계획을 갖고 있는 재즈 트리오이다.
확실히 재즈에서 트리오 구성은 쿼텟(quartet)이나 옥텟(octet)에 비해 비어있는 느낌이 있다.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악기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건에서 하나를 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또 좌 둘, 우 둘, 좌 넷, 우 넷 같은 안정이 느껴지지 않는 구조이지 않는가? 그것을 트리오에 단점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트리오만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기도 하다. 음악에는 밸런스로만 표현할 수 없는 감동스러운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트리오 사운드를 절정의 반열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였다. 그들의 음악은 모자란 듯, 가득 찼으며, 부족한 듯, 넘쳤다. 매 순간 빈 공간을 만들고, 매 순간 그것을 채워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멤버 상호간의 조화에만 매달리는 여느 밴드와 달랐다.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어쩌면 조화를 대신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전통은 트리오 음악을 하는 많은 뮤지션에게 전해졌으며 더티블렌드도 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밴드이다.
About 더티블렌드
더티블렌드는 클래식 기반의 피아노 연주자 최민석과 자유롭고 감각적인 베이스 연주를 추구하는 장영은, 막내이면서도 안정적인 드럼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을 완성하는 양재혁으로 이루어졌다. 2012년 밴드를 결성했지만 지속적으로 멤버들은 바뀌어왔고 근래 들어 드러머 양재혁이 합류하면서 이번 앨범 [소나티네 레슨 Sonatinen lessons]을 내놓을 여건을 만들었다. 밴드의 결성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들려주는 음악 내공은 만만치 않은데 그것은 아마도 음악에 대한 오래된 갈급과 그 음악이 내면에서 차올랐던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큰 형이자 리더인 최민석은 음악에 대한이 편견이 전혀 없는 강한 인상에 비해 겸손한 젊은이다. 그는 자신의 문래동 스튜디오를 오픈하여 음악 감상회, 오픈 스튜디오 형식의 연주 공개를 꾸준히 해왔으며, 간혹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데도 별다른 주저함이 없는 뮤지션이다. 밴드 역시 ‘나우 플레잉 프로젝트’를 통해 일상의 공간에 무대를 마련해서 관객을 만나거나 타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연하여 미술관 등 공연장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무대를 선보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더티블렌드는 앨범의 공개와 동시에 첫 단독공연을 완수하였고, 본격적인 음악여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Album Sonatinen Lessons
더티블렌드의 데뷔 앨범인 [소나티네 레슨 Sonatinen lessons]의 수록곡을 살펴보면 퍽 이채롭다. 일단 [체르니30번 연습곡 중 13번]과 [체르니40번 연습곡 중 26번] 같은 반복되는 선율에 재즈라는 옷을 입혀놓았다는 점이 놀랍다. 어떤 분들은 ‘바이엘’은 없나하고 리스트를 살피겠지만(?), 이 곡들은 모두 피아노 운지와 박자감을 익히기 위해서 피아노 레슨에서 주로 연주하는 곡들이다. 최민석은 “[소나티네 레슨]은 우리가 어린 시절 피아노학원에서 배웠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첫 곡 [체르니 30번연습곡 중 13번]은 그 설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다. 익숙한 멜로디의 반복, 그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작은 장식(표현)들이 재즈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해주는 느낌이다. 피아노는 체르니를 치고 있는데, 베이스와 드럼은 재즈를 연주하면서 다시 피아노가 재즈로 들리는 식이다. 이 앨범에는 부르크뮐러의 두 개의 곡 [18번 연습곡 중 9번 “아침종”], [25번연습곡 중 1번 "순진한마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바흐의 [평균율 제1곡집 프렐류드 22번] 등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각기 다른 어프로치를 선택해서 곡을 듣는 재미를 안겨준다는 점인데, 자작곡인 [Hanon X]를 듣다 보면 확실히 이들은 음악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 밴드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음악에는 확실히 유머와 위트가 있다. 접근법은 재즈지만 그 완성은 언제나 유머와 위트를 남겨 놓는 식이다. 재즈라는 음악이 가진 특징이면서 그 속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바람이 여기에 담겨있다. [무치오 클레멘티의 소나티네 작품36의 1번, 1악장]에는 이 앨범에서 제일 의미 있는 녹음이 담겨있다. 28명 아이들의 연주를 그들의 녹음과 오버 더빙해 아이들의 순수함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나, 입시 때문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질 수 있게 하려는 발상에서 시작했던 곡이다. 최민석의 말처럼 그러한 즐거움은 “좀 더 어려운 체르니에 입문하기 시작하면서 뭔가 달라졌던 거 같다. 악보를 읽느라 음악이 안 들리고, 손가락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진도는 더디게 나가고, 그러면서 이 반복되는 연습이 지루해지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언제 어떤 이유로 음악을 그만두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평생 건반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음악은 즐거운 것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짤막하게 요약하면 더티블렌드는 음악의 즐거움을 다시 대중에게 새겨주고 싶은 의도를 갖고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마치면서 생각해보면 더티블렌드의 첫 앨범 [소나티네 레슨 Sonatinen lessons]은 첫 앨범이지만, 첫 앨범을 위한 ‘신호탄’ 같은 느낌이 강한 앨범이다. 자신들의 자작곡을 숨기는 담대함과 기존의 틀을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본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예상은 아마 적중할 것이다. 멀리 돌아서 왔지만 멀리가야 할 그들의 음악 여정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면면에 있다.
- 김영훈 (출판사 안나푸르나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