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느린 춤을 춘다
포스트록을 흔히 어려운 음악, 평론가들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사운드의 질감이나 색깔로 마음속 심상을 최대한 증폭시켜 끝끝내 폭발시켜버리는데 온 힘을 다하는 이 장르는 확실히 낭비라고는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는 절제와 효율의 팝 음악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후자에서 시작해 전자로 몸집을 불려가는 음악을 상상해보자. 시작은 곡의 짧은 모티브 혹은 작게 흥얼거리는 익숙한 멜로디 한 조각이다. 소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만의 속도로 행진한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그 걸음은 소리 숲에 숨어있던 동지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은다. 가녀리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에 기타, 베이스, 드럼이 더해지다 결국, 솟아오른다. 그렇다. 이들의 음악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트록의 전쟁 같은 폭풍이 드물다. 대신 조용히 흐르고, 차분히 가라앉고, 잠시 솟아올랐다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전에 없이 매력적인 기승전결.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다.
수년 새 우후죽순 늘어나며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는 신인밴드 경연 프로그램들이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새 밴드와 경향을 짚어보기엔 이만한 지표가 없다. 그렇게 꾸준히 훑어보던 지난해 각종 루키 프로그램 라인업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이 있었다. '안다영 밴드'였다. 투박한 이름에 한 번, 무대 위에서 마냥 진중하고 또 진중한 모습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 만남은 다소 어색했다. 다섯 명의 멤버가 만난 지 채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게 당연했다. 태세를 바꾼 건 몇 번의 만남을 반복한 후였다. 결성 초반 서로를 탐색하는데 쓰던 멤버들의 기운이 음악으로 연주로 골고루 퍼져나가며 이들은 볼 때마다 몇 계단씩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흔치 않은 루키가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달랐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달랐다.
그런 꾸준한 '성장'은 '안다영 밴드'를 2016년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 밴드 라인업에 올린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사이 이름도 바꿨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하 끝잔향). 음악은 물론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커버로 사용해 유명세를 떨친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앨범 [귓가에 남은 잔향 속에서 우리는 연주한다(Með suð i eyrum við spilum endalaust)]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름은 그러나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따르겠다는 선언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그저 선과 선이 뭉친 자신들의 음악과 닮은 문장이라 생각해 붙였다는 이름은 왜 이들이 이런 가볍지 않은 선택을 선뜻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마치 처음 만난 순간 서로를 알아본 운명처럼, 이들의 음악과 새로운 이름은 타고난 운명공동체만이 그릴 수 있는 포물선을 쉼 없이 그린다.
'끝잔향'의 모든 음악은 보컬 '안다영'이 쓰는 목소리와 멜로디를 시발점으로 한다. 이는 끝잔향의 음악이 다른 포스트록 밴드들과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확고한 시작점이 존재하는 만큼 이들의 연주는 포스트록 밴드 특유의 확장과 탈주보다는 배려와 균형에 집중한다. 점층적으로 소리를 쌓아가는 곡의 구성은 크게 다를 바 없을지 모르지만 이들이 그리는 소리는 이리저리 뻗어 마냥 달려나가는 직선이 아닌 중심을 기준으로 끝없이 원을 그리는 곡선에 가깝다. 특히 '안다영'이 '끝잔향'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마지막 곡 "Till The Night There"은 그가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왜 지금의 멤버들을 필요로 했는지를 부드럽게 설득하는 대표적인 곡이다.
준비된 세 곡 모두 꽤 강한 집중력과 호흡을 요구하는 곡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그 기다림 뒤, 당신의 눈앞엔 온통 은빛으로 빛나는 설산, 바닥이 그대로 보이는 투명한 얼음 호수, 미끈한 줄기를 자랑하는 흰 자작나무 숲이 펼쳐질 것이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고작 20분여의 시간과 클릭 한 번, 그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