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베개와 천장 그 사이"
새로운 음악을 소개할 때마다 쓰고 싶어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드는 악마의 표현이 하나 있다.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을 때 무엇보다 유용한 교활한 묘사이자 음악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이 말을, 실은 '파라솔'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도 슬쩍 끼워 넣고 싶었다. 실제로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 역시 '뭐지 이건'하는 초월적 의문에 가까웠으니 적어도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 이들의 음악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쉽게 말하는 건 거짓임은 물론 일종의 직무유기일 것이다. 첫 EP를 낸지 2년, 정규 앨범 발표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싱싱한 이 밴드는 대중 앞에 첫 선을 보이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베개와 천장 사이를 떠다니는, 한 없이 하찮지만 때로는 우주보다 거대한 심상을 끊임없이 채집하고 있다.
'파라솔'의 음악을 듣고 순간 마음을 빼앗긴 건,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너무나 정성스럽게 노래하고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아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만 집중하는 무아의 경지. 이혼서류에서 장기 밀매까지 다소 다이나믹한 소재들이 등장하는 노래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언제나 베개와 천장 사이를 무대로 한 작은 소동극 같은 구석이 있었다. 친구들과 얼싸안고 술기운에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패기 넘치게 외친 뒤 돌아온 방, 눈앞에 펼쳐진 언제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짓는 작은 한숨과 공상 같은 매력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뭐라도 한 것처럼 이불 속에서 몸 한 번 돌리는 게 힘겨운 일상. 치열한 삶에 대한 고찰은 물론 때로는 우주까지도 날아가는 열정 넘치는 밴드들 가운데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특별했고 그래서 눈에 띄었다. 눅진눅진 눌어붙은 일상의 권태를 소리로 청각화하면 이런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 보컬 지윤해의 고집스럽도록 나른한 목소리는 그런 밴드 '파라솔'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고유한 인장이다. 흔한 세션이나 특별한 레코딩 기술의 도움 없이 합주실에서 마이크 몇 개와 노트북, 합주실 악기를 활용해 진행하는 녹음방식이나 멤버 각자의 집에서 뚝딱 해결한다는 믹싱까지 멤버들은 오로지 세 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에 흥미와 재미 모두를 느낀다고 한다. 덕분에 드문드문 눈에 띄는 공백마저 멤버들의 의도 그대로 읽히며 이들의 음악이 가진 특유의 부유감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
'파라솔'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라이브와 합주, 레코딩까지 어느 것 하나 분리하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로 안고 가는 이들의 올곧은 성향은 온스테이지 영상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분당 율동공원의 원형무대를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은 신곡 '베개와 천장'을 포함한 세 곡. 세 영상 모두 밴드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매력을 담고 있는데, '베개와 천장'이 리듬파트와 기타, 보컬 멜로디가 주고받는 아기자기한 앙상블에 주목한다면 '어느 거리에'는 특유의 변화무쌍한 곡 전개가 돋보인다. 라이브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곡이자 '파라솔'만의 빈티지한 비밀스러움이 잘 살아 있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