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설빈의 음반에 대하여
나는 '여유와 설빈'을 모른다. 공연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여태 그저 딱 두 번 만났을 뿐이다. 서울에서 이들이 내 공연을 보러 왔을 때 처음 만났고, 사흘 전 제주 공연에서 두 번째 만났다. 둘은 지금 제주에 살고 있다고 했고, 우리는 함덕의 작은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이들이 밥을 사려고 했지만 내 것은 따로 냈다. 왜냐하면 이들을 아직 잘 모르니까. 나는 모르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부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향적이라 말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목적이 있어 진짜 자신을 숨기고 포장하는 사람이 그런 부류다. 여유와 설빈은 믿을 만한 사람일까? 마침 여기 문이 있으니 들어가 보자. 목수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놓고,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고 있는 문. <모든, 어울린 삶에 대하여>라고 써 붙인 열두 개의 문 안으로 들어가 이들이 가진 마음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 삶에 배인 습관 따위를 추측해 보고 나의 세계와 견주어 보는 것. 음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만약 문 안으로 들어가도 드러나는 것이 없다면,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거나 문을 잘못 만든 것이다.
이들은 옛날 사람 같다. 실제 나이는 아주 젊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그렇다. 존 레넌, 밥 딜런, 한대수, 김민기 노래처럼 살고 싶다(생각은 자유)거나, 달동네에 사는 베짱이가 안도현의 시구를 인용하는 것(개미마을)도 그렇고, 어린 시절 할아버지 경운기 뒤에 타고 다녔다는(할아버지) 이야기들은 도대체 이들이 이십 대 중반의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인다.
목소리는 어떤가. 여유의 보컬은 데미안 라이스와 브릿팝의 그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바다냄새가 난다. 바다는 오래되었고 고집이 세다. 아마도 그는 부드러워 보이나 고집 많은 사람일 것이다. 설빈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분명 앨범의 주된 목소리는 여유지만 설빈이 우리를 데려가는 풍경이 또 있다. 그것은 여유의 바다와는 다른 곳, 따듯해서 늘어지는 바다가 아니라 황량한 겨울의 강릉이나 속초, 혹은 북유럽의 바닷가다.
물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것의 특징이기도 하다. 처음 시를 쓰는 사람이 아주 오래된 시의 단어와 분위기를 흉내 내는 것처럼. 어쩌면 이들도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오래되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무르익어야만 좋은 음악인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낫다거나 옳다고 못 하는 것처럼, 풋풋한 음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첫 앨범은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의 노래가 풋풋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치고 편곡을 포함한 전체적인 사운드도 꽤 안정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앨범을 함께 만든 목수들(프로듀서와 세션 연주자들과 엔지니어) 덕분이리라. 다만 나는 이들의 가사(태도)에서 풋풋함을 느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영향 받은 음악과 사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분명하게 말하며, 더 슬프거나 새롭게 보이려고 포장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 걷고 발맞추다 다른 걸음으로 집을 짓겠다고(먼 훗날 당신과 나)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청춘'이나 '첫 음반' 같은 단어들에서 기대하는 바로 그것, 자신감이다. 결국 이들의 솔직함과 부드러움은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더욱 믿음이 가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1, 2, 3, 4, 6, 7, 9, 11, 12번 트랙). '당신'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우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란, [모든, 어울린 삶에 대한] 단어 아닌가.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야 마는 사람들. 나는 이런 부류를 '찐따'로 발음하고, 사랑한다. 세상의 셈과 남들의 방식을 쫓지 않는 사람들이다. 여유와 설빈도 ‘찐따’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실제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그저 문으로 들어가 내가 듣고 본 것을 바탕으로 추측해 본 것이다. 듣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대로 추측할 권리가 있다. 실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앞으로 여유와 설빈이 스스로 증명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 두 사람이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 사이(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
제작 씨티알싸운드
프로듀서 양현석 코프로듀서 황현우
작사, 작곡 여유, 설빈(12)
편곡 여유, 설빈, 황현우, 양현석, 박진호(3,11)
보컬, 코러스, 기타, 우쿨렐레 여유
보컬, 코러스, 실로폰 설빈
퍼커션 손원진(1,4,7,10), 양군 (1,2,3,8,10)
베이스 까르푸황
피아노 이은철
클라리넷 박진호
일렉기타 여유(3,7), 황현우(3,11) 박진호(11), 황성준(7)
하모니카 박형곤
레코딩 박진호, 황현우 @긴가민가노래방
믹싱, 마스터링 황현우 @씨티알싸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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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혜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