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김학선
자정이면 어김없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제스로 툴 'Elegy'의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고 이어 낮고 음울한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수가 적었던 디제이. 두 시간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오직 아티스트 이름과 곡 제목뿐이었다. 그리고 시 한 편을 읽어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방송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밤을 지새웠다. KBS FM '전영혁의 음악세계'였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라디오가 있다. 누군가에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가 그랬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그랬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 그랬다. 디제이와 청취자 사이의 교감은 라디오만이 전해줄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되고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됐다. 조그만 라디오 안에는 정말 커다란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동희는 이 라디오의 특별함을 기억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황인용의 밤을 잊을 그대에게',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에게 라디오는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해준 친구였다. 자신의 성장기를 함께해준 친구를 위해 조동희는 노래를 만들었다. '라디오' 연작이다.
독특하게 노래 제목은 '라디오80', '라디오90', '라디오00'이다. 노래 하나를 두고 각 년대의 특성에 맞게 편곡했다. 80년대의 라디오가 신서사이저가 먼저 귀에 들어오는 옛 팝송 스타일이라면 90년대의 라디오는 모던 록 스타일의 곡이다. 2000년대의 라디오는 감상용 일렉트로닉 버전이다. '라디오00'에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故조동진의 아들이자 조동희의 조카인 조승구의 참여가 눈에 띈다.
뛰어난 작사가이기도 한 조동희의 노랫말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그에게 라디오는 친구와 서로의 맘을 나눌 수 있게 해주던 매개체였고 가슴 답답할 땐 마음을 달래주던 친구였다. "설레임이었던 친구였던 / 나의 기다림이었던 위로였던 / 내게 넓은 세상얘길 들려주던"이란 노랫말은 라디오의 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겐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정서이자 공감이다. 노랫말만큼 편안한 선율은 쉽게 귀에 감기고 코러스는 중독적이다. '어른의 팝'을 듣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같은 정서를 가진 이들에게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그 시절의 라디오만큼 친숙한 친구가 될 수 있는 노래다. ....
![](http://i.maniadb.com/images/btn_back.gif)
![](http://i.maniadb.com/images/btn_more.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