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의 시작, '데카당' 첫 EP [ㅔ]
괴롬과 결핍, 내 것이 아닌 내 기억과 사랑의 노래들
지금 우리의 "날씨는 그다지 맑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밴드가 여기있다. 그들은 어디든 활보하고 어디서든 자신의 족적을 묻힌다. "부유한 자만이 부유할 수"있는 이 세상에서 충분히 건조함에도 "마름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를 "우린 참 간사"하다고 외치며 지나쳐간다. 자신들의 기억 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분노와 염증으로 가득찬 노래를 부른다. 원망의 대상은 어떠한 ‘무엇’이 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일 때도 있으며, 동시에 타인일 수도 있고, 우리 모두일 수도 있다. 모호한 상태의 그들의 불안정은 이번 [ㅔ]에서 두드러진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모아서 말을 건넨다. 서로간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흐릿하게 곡을 써내려간다. 점차 각자의 삶이 공유된다. 주제는 항상 결핍을 근거하고 비대한 데이터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건 무엇인가 고민한다.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갖는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사유할 뿐이다. 지극히 자신들을 위한 노래이며, 위로하는 목적이 아니라 화를 내고 있음을 선포하는 노래다. 그러나 바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아닌 화가 난다는 선언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도 위로의 형태가 된다.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지는 예쁜 것도 아니고, 속이 후련해질 정도의 소모를 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늦은 새벽 퇴근길에 불이 켜져있는 오피스텔의 창문들을 보며 '아 다들 깨어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안도감이다. '데카당'은 이것을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라고 일축한다.
그 와중에 '사랑'은 얼마나 비겁하게 우리의 삶에 녹아드는가. 그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빼앗는 존재도 결국은 결핍과 과잉 속에서 태어난다. 쌓이는 시간을 뒤로하며 무뎌지지 못한 것들과 흐릿해진 것들 사이에서의 공명은 귀아픈 비명을 만든다. '벌에 쏘인 것인가 침을 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인가'는 쉽게 동의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동안에 얼마나 우리는 손쉽게 인지와 선택을 해왔는가. 남겨지는 후회와 아쉬움은 얼마나 애틋한가. 그리고 "배은망덕한 기억"은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잔인할 정도의 자기반성과 그 뒤에 따라오는 하루, 그것이 자아낸 혐오는 그들을 끝까지 쫓아다니고 괴롭힌다.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며 짓는 결정은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반성이다. 끝없는 이 반복 속에서 태어난 탕자는 밖으로 나가 하나씩 하나씩 또 끝 없는 사유를 부유하고 결핍을 인지한다. 그렇게 자라난 그는 다시 돌아온다. 어린아이 그 모습을 한 채로 폭삭 늙어서 돌아온다. 아니 탕자는 이미 돌아왔다.
-송지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