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더나잇(We Are The Night)'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들뜬 마음 가라앉히고]
PM 10:40
서울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통영으로 가는 마지막 차를 타기 위해서다. 누구에게나 각자 철저히 혼자가 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심야버스를 탄다. 가급적 먼 곳을 행선지로 정하고 긴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도망칠 곳 없고 반복되는 진동을 느끼며 눈을 감을 것이다.
AM 12:30
생수 한 병을 가방에 넣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이번 음반에 수록될 음원들을 차례대로 들었다. 혹시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반복적으로 무심히 재생된다. 소리들이 머리를 거치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음반이 발표되면 이 음악들을 자주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음악을 믿고 있다. 당신은 음악을 믿고 있을까? 우리끼리 얘기지만 참 모든 일이 우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순전히 당시의 기분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잘 참고 잘 숨긴다. 아마도 큰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고, 별거 없는 생활을 하다 끝이 나지 않을까 싶은 적이 많다.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의 출입문이 닫혔다.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 묘하게 겨울을 닮은 옷자락 부딪히는 소리, 음식 냄새. 시동이 켜지며 진동이 몸에 닿는다. 마음이 놓인다. 계획했던 대로 버스에 올라탔고, 출발 전 화장실에 다녀왔으며 겉옷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목적지로 향한다. 지금 내겐 끝이 있고 시작은 방금이다.
AM 02:00
사방이 깜깜하다. 도시를 빠져 나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실내등이 꺼지고 승객 대부분이 잠에 들었다. 지금은 휴대폰 불빛이 지나치다. 집을 나설 때부터 이번 음반에 수록될 음원들을 차례대로 들었다. 혹시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반복적으로 무심히 재생된다. 이곳은 어디쯤일까. 1년이 지나간다. 사방이 깜깜하다. 눈꺼풀이 무겁다. 소리들이 다시 날 서울로 데려다 놓았다. 진동이 재촉한다. 눈꺼풀이 얼음처럼 무겁다. 풍경이 부서지고 섞이며 음악이 되었다. 검은색이 완벽하다.
AM 04:30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 묘하게 겨울을 닮은 옷자락 부딪히는 소리. 실내등이 켜지며 진동이 몸에 닿는다.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는 음성이 무심히 재생된다. 생수 한 모금을 들이켜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버스는 터미널로 들어섰다. 눈꺼풀이 무겁다. 주변의 숙소를 검색한다. 겉옷을 챙기고 음악을 껐다. 마음이 놓인다. 이제 난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들뜬 마음 가라앉히고] 당신에게 이 음악을 권한다. 2017년, 근 1년간의 마음이다.
당신은 음악을 믿고 있을까? 나는 아직 음악을 믿고 있다.
글: 함병선 (위아더나잇 보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