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권 이탈. 전파가 닿지 않는 지역. 방해받고 싶어도 방해받지 않으며, 방해하려 해도 방해할 수 없는 그런 곳. 그렇기에 일부러 전원을 끄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는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진정한 나와의 대화 시간. 먹먹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사색에 빠진다. 추억을 불러내기도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우울함을 끄집어내기도 하며, 순간순간 놓치기 싫은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비로소 '내가 나로 존재'하는 느낌을 보다 강하게 갖게 된다. 정말로 살아있다는 느낌. 그리곤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음에 안도하게 된다. 그의 음악에도 그런 힘이 있다. 황푸하, 그의 음악은 통화권 밖에서 왔다.
통화권 밖에서 온 음악. 그렇기에 황푸하에 대한 정보도 적은 편이다. 실은 나도 그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피상적인 정보'는 전혀 필요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본질적인 정보'는 음악 안에 있으니까. 사소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1집 [칼라가 없는 새벽]에 담긴 정서는 매력적이다. 최근,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생활 속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듯, 그의 음악 속에도 과한 것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부족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아니, 그는 아예 처음부터 음악 속에 쓸데없는 물건을 쌓아두지 않았다. 단순한 아르페지오 주법을 기반으로 한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의 사운드가 더해졌다. 그리고 그러한 절제미 속에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철학적인 가사가 가냘픈 듯 무거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담백하고 명료하게 전달된다.
구름이 피어나자, 마음도 피어난다. 그리고 해가 뜬다. '황푸하'의 "해돋이" 그렇게 시작된다. 특별히 꾸미지 않았지만, 특유의 멜로디는 자연스레 넓게 울려 퍼진다. '레인보우99(류승현)'의 손끝에서 발현되는 영롱한 톤의 기타 사운드는 '황푸하'의 음악을 보다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또한 "꿈꾸던 축제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춤춘다 춤춘다"라는 가사와 함께 시작되는 질주하는 사운드는 그의 음악이 그저 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반짝반짝. 어둠 속에서 조명 몇 개만을 의지한 채 연주되는 "멀미"는 이번 온스테이지의 하이라이트다. 튀는 구성이 있는 곡은 아니지만,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이 이뤄내는 앙상블은 그 여느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충만함을 선사한다. 특히 슬픔과 기쁨을 넘나드는 것 같은 바이올린의 비브라토와 피치카토는 그 백미다. 또한 "내 상태를 좀 알아주세요. 잊지 마세요. 내가 존재한다는 걸"이라는 끊어질 듯 연약한 가사는 '황푸하' 특유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표현법이기도 하다.
아무리 내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연약하더라도, 언제나 희망은 존재한다. "쿰바야"는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 희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밴드 멤버 모두는 자신의 매력을 숨기지 않고 시원하게 소리를 뿜어낸다. 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황푸하'도 이 곡에서만큼은 능숙하게 리듬을 타고, '레인보우99'의 기타는 보다 입체적으로 곡을 이끌어간다. "푸른 바다와 힘찬 강물 위 아름다운 무지개 펼쳐진다." 이것만큼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결말이 어디 있겠는가?
'황푸하'. 어떻게 보면 그의 음악에서 제목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곡의 가사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주제를 부각시키고, 그에 합당한 사운드는 그 주제를 더욱 확실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정말, 간만에, 마음이 정화되는 연주와 목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약 지금, 당신이 여러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싶다면 그의 음악을 들어보길 바란다. 일부러 통화권을 이탈할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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