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마음 깊은 곳의 그대로
인기리에 방송 중인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속 한 장면. 장을 보고 돌아오던 '이효리'와 '이상순'이 차 안에 드러누워 흐르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바로 '강태구'의 노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이다. 뮤지션답게 좋은 곡들을 찾아 듣곤 하는 '이효리'와 '이상순'은 '강태구'와 그의 노래를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노래를 이미 알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만큼 여러 번 들었다. '강태구'의 노래는 두 사람의 짧은 휴식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바람이 많은 제주, 그 바람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강태구'의 노래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사랑은 어쩌면 함께 바람 속을 걸어가고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오면서 함께 노래하는 것. 그리고 간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닐는지. '강태구'는 이렇게 누군가의 쉼이 되고 생활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섬세한 연주로 '강태구' 목소리의 결을 더 풍성하게 하는 강혜인의 바이올린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과 바이올린으로 마음을 담고 고백하고 위로하면서, 여기 좋은 노래가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으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를 들으며 숲 속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말한다. 바람소리와 그 바람으로 나무 흔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깨어났나 보다. 바람 불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던 마음이 깨어났나 보다. 바람이 멀리서 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바로 내가 있던 곳에서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던 곳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깨어난 마음은 원래 마음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강태구'는 그곳을 숲 속이라고 표현했다. 누구에게나 숲이 있겠지. 마음이 태어나 떠나온 곳이 있겠지. 잊고 있으나 잊을 수 없는 곳. 늘 돌아가고 싶고, 끝내 돌아가게 되는 곳, 그곳이 있음을, 그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강태구'는 느린 기타 스트로크와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로 드러내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같은 삶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끈다.
선언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는 노래는 그저 자신이 느끼는 대로 노래할 뿐이다. 자신의 마음이 차올라 간절해질 때 비로소 노래하는 듯한 '강태구'의 노래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함으로써 스스로 애틋해진다.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 길을 걷고 숲을 걷네 / 노을 지는 해변에 앉아 /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라는 노랫말에는 서로를 소중히 아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시간이 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으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시간, 그 사소함이 오래 쌓여 더 특별해진 마음. 우리는 그 특별한 마음을 사랑이라 부른다. 하지만 '강태구'는 애써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저 너는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어 / 너는 내 삶의 이윤 아니지만 / 네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어 라고 노래할 뿐이다.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요즈음의 노래들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을 이토록 담담하고 무심한 듯 간절하게 담아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목소리를 높여 감정을 터트리지 않고도 울컥할 만큼 먹먹하게 하는 솜씨는 '강태구'의 노래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조동진을 떠올리게 하는 호흡. 그리고 관조, 응시, 성찰, 절제가 결합된 음악의 깊이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다 소진되지 않은 축복이다.
항상 음악은 마음을 담고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제 소명을 다한다. '강태구'는 자신보다 먼저 어쿠스틱 기타로 그 일을 해냈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 그 자체에 깃든 힘을 확인시킨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음색과 호흡, 떨림, 공백이 멜로디를 만나고 가사를 만날 때, 찰랑거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사려 깊은 바이올린 연주를 만날 때, 목소리는 온전한 노래가 된다. 노래가 된 목소리는 어떤 고백보다 깊고 뜨겁다. 그 노래가 깊고 뜨거운 이유는 '강태구'의 목소리가 된 마음이 이미 깊고 뜨겁기 때문이다. 그 깊고 뜨거운 마음을 강태구가 자신의 목소리와 멜로디와 노랫말로 담담하게 옮겨 담았기 때문이다. 좋은 뮤지션은 자신 안에 숲이 있는 사람이고, 우물이 있는 사람이다. 숲을 지나는 바람 같은 목소리를 갖게 된 사람이고, 우물을 길어올릴 수 있는 표주박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가보지 않은 숲에도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 안의 우물에 비로소 줄을 늘어 뜨려 깊이를 재고, 마음을 길어올릴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건 내 옆에 있다가 / 어느새 저기 멀리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그때 홀로 견뎌야 하는 쓸쓸함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누구든 경험하게 되는 노래의 치유. 그 마술 같은 일을 지금 '강태구'가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