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 [내게 보이기 시작한]
기타리스트 이태훈을 말로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흰 라운드 티셔츠와 쪼리를 착용하고 기타 줄을 두 개씩 끊어 먹으며 공연하는 이태훈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여러 장르를 소화해내지만, 어느 장르에도 묶여있지 않다. 세컨세션, 헬리비전, 화분, Cadejo, 서사무엘 밴드 등 여러 밴드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의 첫 솔로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이 어떤 음악이 담긴 앨범이 될지 직접 듣기 전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기타 독주 앨범인 [내게 보이기 시작한]은 "공원의 풍경"이라는 곡으로 시작한다. 첫 곡부터 이태훈은 오른손 피킹의 강약으로 만들어내는 다이내믹과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지만 위태롭지는 않게 이어가는 긴장감 있는 리듬으로 청자마저 숨을 고르며 집중하게 만든다. 첫 곡의 연주를 마치고 "들어볼게요"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오케스트라 앙상블도 음압을 꽉꽉 눌러 넣은 전자음악도 아닌 단 한 대의 기타 소리에 압도되어 듣게 된다.
2번 트랙인 "사랑하는 여자"에서는 이태훈의 독창적인 화성을 들을 수 있다. 그는 곡의 메인 테마 중 하나인 올라가는 스케일 속 두 텐션음과 바뀌는 듯 아닌 듯 코드에서 한두 개의 음만 바꿔가며 만들어내는 코드 진행을 사용하여 청자의 예상이 빗나가게 하지만 불편하게 들리기보다는 곡의 전체적 분위기와 조화롭게, 아니 오히려 곡을 더 신선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그 뒤로 비교적 편하게 청취할 수 있는 곡들이 이어진다. 이태훈의 호흡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7번 왈츠", 기타 선율 위에 휘파람 소리가 따라가는 "있어줘", 그리고 "그 누구도 위하지 않는 송가"는 앞의 두 재지한 곡보다 비교적 클래식 기타 연주곡 같은 느낌이 있다. 이태훈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알고 있던 청자들에게는 오히려 가장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6번 트랙 "가만한 바람"에서 다시 한번 분위기가 바뀐다. 조금 더 산뜻하게 바뀐 연주에 유니슨으로 부르는 이태훈과 최고은의 목소리가 얹혀 따듯하면서 시원하기도 한 봄바람이 얼굴에 불어오는 느낌을 준다. "잠에 취해" 역시 보사노바 적인 코드 워킹과 더욱 타악기 적인 피킹으로 더욱 가벼우면서 달콤한 느낌을 이어간다.
마지막 트랙인 "보이지 않는 것들"은 플라멩코 기타 연주의 클리셰들을 전부 담아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담되 이태훈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더하듯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방식의 진행으로 플라멩코라는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편곡가로서, 그리고 연주가로서 음악가 이태훈의 재능이 영롱히 빛나는 이 앨범이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소리를 훌륭히 담고 조절한 Studio Log의 음향 엔지니어 민상용 기사의 공이 크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기타 줄 위를 스치는 소리, 기타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피킹 뉘앙스, 곡의 분위기에 따라 어울리도록 다르게 잡은 공간감, 휘파람이나 목소리가 기타 연주와 함께할 때의 조화로움 등을 전부 훌륭히 살리면서도 음량을 고르게 담아낸 것은 이런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로 생각한다. 연주자를 바로 마주 보며 연주를 듣는 듯한 현장감 외에도 이태훈이라는 연주자가 사람으로 느껴지고 감정이 잘 전달되는 소리의 앨범이다.
이태훈의 [내게 보이기 시작한]은 참 좋은 앨범이다. 여덟 트랙에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담았다. 여러 악기를 사용하고 직접 만들어내거나 어디선가 따온 소리를 담은 곳에 가사와 목소리로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타 장르의 앨범을 들을 때보다도 더 많은 감정이 와닿는다. 이 앨범을 전부 듣고 나니 인간 이태훈이 어떤 사람인지 "내게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 든다.
이상훈(Con Tempo 대표)
크레딧: 작곡, 편곡, 연주 이태훈 (트랙 6번 최고은) All music by Taehun Lee except on Gonne Choi on Track 6.
프로듀싱: 이태훈
녹음,믹싱,마스터링: 민상용 at Studio Log
매니지먼트: Craft and Ju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