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21세기 신여성의 기원
음악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요즘 누가 핫하냐는 영원하고도 숙명적인 질문에 늘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없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마음이 편하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기준과 조건으로 아무리 각박하게 따져 봐도 그는 진짜 핫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래를 쓰고 부를 뿐만 아니라 진보(Jinbo)의 'TT', 프라이머리의 '알아'를 노래한 보컬. 방탄소년단 'Lie'의 프로듀서. 지산 록 페스티벌 'CHILL89' 부스의 아트디렉터. 짧은 기간 내에 이걸 다 해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요즘 음악 좀 찾아 듣는다는 분들이라면 어디서 건 그가 관여한 결과물이 귀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언더와 오버의 경계를 넘어, 장르와 영역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이름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듯 이곳저곳에 꽂아 넣고 있기 때문이다. 신예라기엔 이미 너무 굉장해져 버린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수민(Sumin) 이야기다.
사실 그의 음악을 처음 듣고 놀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어디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인데, 우선 마치 자이언티나 딘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이건 그냥 잘 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새로운 세대를 넘어 신인류의 등장이랄까? 기술적 숙련도나 완성도를 떠나 이전 세대의 이른바 선배 아티스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분위기와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보컬의 발성이나 발음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만들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수민의 경우는 오히려 R&B를 중심으로 레퍼런스가 되는 장르적 특성을 해체해 사운드의 소스나 화성과 같은 편곡적인 요소와 더불어 자신의 스타일로 재구성함으로써 더욱 구조적인 차원의 새로운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더욱이 누가 실용음악 전공자 아니랄까 봐 재즈적인 화성을 비롯해 특히 브릿지 부분의 전조와 리듬의 변주는 정말 끝내준다. PBRNB라고 전자음향 소스만 잘 고르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 같다. 더 멋진 건 이걸 굳이 분석적으로 듣지 않아도 한 마디, 한 소절만 들으면 바로 '와 이거 새롭다!'라고 반응하게끔 농밀하고 촉촉한 사운드로 녹여냈다는 점이다.
한편, 편곡적인 측면에서는 이토록 듣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복잡한 구조를 짜놓은 반면에 그 안에서 들려오는 가사는 도발적일 만큼 직설적이고 멜로디는 물 흐르듯 단선적이다. 덕분에 노래의 에너지는 응축되고, 메시지는 명료해진다. 드러낼 곳을 드러나게 하고, 뒤로 빠질 곳을 빠지게 하는 프로듀서로서의 명민함이 돋보인다. 가사 이야기를 더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지금껏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는 여성 화자가 드러내놓고 'F**k Me'라 노래한 적은 대한민국 음악사에 없었던 만큼 파격적이지만, 수민은 그것을 듣기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해 낸다. 숱한 걸그룹의 노래들처럼 남성의 욕망을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대신 노래하지 않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송 라이터들처럼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담담하게 (실제로는 우울하게) 담아내지도 않는다. 스스로의 사랑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여성의 시선에서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사랑의 순간을 어둡고 음울한 구석 없이 달콤하게 노래한다. 21세기형 신여성이랄까? 스웩~!
이번 온스테이지는 3인조 밴드와 함께하는 구성으로 수민의 깔끔한 편곡과 매력적인 음색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다. 첫 곡 'U & Me'는 진보와 함께 노래하면서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 화제가 됐던 곡으로 세심한 진보와 시원시원한 수민, 두 사람의 기막힌 호흡이 달콤한 사랑의 순간으로서의 도시의 밤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두 번째 곡 'Sparkling'은 밀도 있게 쌓아올린 한 음 한 음, 특히 수민의 목소리 자체가 찰랑거리는 사운드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몽환적이면서도 중독성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마지막 곡 'Brown'은 원래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료, 이 시대 또 한 명의 신여성 후디(Hoody)와 함께 녹음한 곡이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홀로 소화함으로써 그의 음색과 역량에만 더욱 집중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쪼록 현재 가장 핫한 뮤지션이자 음악계에 등장한 신인류? 혹은 신여성?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종의 기원에 해당할지도 모를 이 젊은 아티스트의 순간순간을 동시대에 함께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기를. 순간은 이미 역사가 되고 있기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