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빈자리는 싱글 [기억의 빈자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앨범은 총 13개의 트랙이 수록되었으며, 48, 49, 50번 트랙은 CD Only 트랙입니다.
Somewhere Between Soul & Synth
이제는 선명해진 나얼의 음악 교리
‘doctrine[da:ktrin] : 교리, 교훈, 주의, 학설 따위의 뜻으로, 국제 사회에서 한 나라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정책상의 원칙.’
나얼의 정규 2집 앨범 타이틀은 선공개 싱글 때부터 일찌감치 회자되었다. “Sound Doctrine”. 광의로 접근하면 굉장히 거창한 느낌이, 협의로 접근하면 무척 경건한 느낌이다. 앨범을 접하기 전에 먼저 접한 타이틀만으로도 이번 앨범에 대한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생각과 이야기를 앨범에 담아내는 나얼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doctrine’이란 단어의 선택은 ‘나얼(My Soul)의 원칙(principle)’을 내세웠던 정규 1집 “Principle of My Soul”보다 그 신념의 강도가 더 세어질 것임을 짐작케 했고, 실제 그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은 더욱 선명해진 자신의 음악 교리대로 써내려졌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선보여 온 나얼의 음악적 지향은 소울(soul)과 신스(synth)로 요약된다. 트렌디하지 않다는 일부 대중의 평가 속에서도 그의 앨범에서는 항상 필리소울과 어반신스가 주인공이었다. 1970년대를 주무대로 하는 소울, 1990년대까지 이어 온 신스발라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그의 음악적 근간으로 자리했다. 소울과 신스의 사이에 자리한 어딘가,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자리한 어딘가에 나얼의 음악적 교리가 자리하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앨범에는 싱글 커트된 ‘기억의 빈자리’, ‘Gloria’, ‘Baby Funk’ 3곡을 포함해 10개의 트랙이 수록되었으며, CD를 구입하면 ‘CD Only Hidden Track’으로 3곡을 더 만나볼 수 있다.
앨범의 전반적인 톤은 따뜻함과 경건함이 지배한다. ‘기억의 빈자리’와 같은 감상적인 발라드곡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앞뒤에 자리한 훵크 사운드가 슬픔의 겨를을 없애주며, 곡 전반의 가사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행복을 전한다. 봄에 어울리는 따뜻한 사운드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경건함 또한 지난 앨범들에 비해 더욱 선명해졌다. 다양한 사운드와 다채로운 이야기로 자신의 음악 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교적 경건함 또한 알차게 담아냈다.
앨범을 반복해서 듣는 문화가 사라져가는 요즈음이지만 3곡의 선공개 곡은 리스너가 이 앨범에 녹아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미 친숙한 곡들이 수시로 반복되며 앨범 듣는 재미를 높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앨범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트랙들도 한 곡 한 곡이 의미심장하다.
앨범의 문을 여는 ‘Soul Walk’은 단어 그대로 앞으로도 한 결 같이 계속 걸어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4집에서 소개한 바 있는 1970년대 흑인 영화 장르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OST 느낌으로 만든 곡이다.
1980년대 모던 팝소울 느낌을 담은 ‘Heaven’은 아프고 불행한 사람이 없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내용. 과하지 않은 업템포 전개로 밝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어지는 ‘Spring Song’ 역시 밝은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전형적인 필리소울과 두왑의 스타일을 믹스한 곡으로 나얼의 따뜻한 감성이 낯설 정도로 감동적이다. 가성 창법과 보컬 애드립의 정점을 보여주면서도 따뜻함과 안정감을 잃지 않고 있으며, 내 몸이 바람 속으로 떠오르듯 드라마틱하게 음을 끌어올린다. 나얼의 가창능력은 언제나 놀랍다. 격정을 어루만지는 두왑 코러스의 힘 또한 인상적이다.
선공개 되었던 상심의 발라드 ‘기억의 빈자리’는 ‘Baby Funk’와 ‘Stand Up’이 감싸고 있다. 두 곡 모두 흥겨운 훵크 사운드. 특히 이번 앨범에서 가장 꽉찬 사운드를 자랑하고 있는 ‘Stand Up’은 사운드는 물론 나얼의 힘주어 부르는 굵직하고 묵직한 보컬이 이채로운 흥겨움을 전한다.
가장 흥겨운 ‘Stand Up’이 지나면 차분하고 경건한 곡들이 이어진다. 흑인 음악의 색을 거의 느낄 수 없는 팝 성향의 발라드 ‘Blue Wing’은 팝의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어 가사로 작업했다.
선공개 리메이크곡 ‘Gloria’에 이어지는 ‘널 부르는 밤’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낙점되었다. 1970년대 사운드와 1990년대 사운드를 혼합시킨 R&B 곡으로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확보할만한 곡이다. 리얼세션으로 녹음하여 소리의 친화력을 높인 부분이 돋보이며, 저 높은 곳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나얼 보컬의 강점 역시 돋보인다.
정규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Comforter’는 위로와 평안을 전하는 가스펠곡이다. 검은색을 빼고 만들어 낸 가스펠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며 감성적이고 영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섬세하게 소리를 조율하고 공간을 채워나가며 7분이 넘는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완성했다.
CD로 들을 수 있는 세 곡 역시 특별하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널 부르는 밤’이 확장 버전(Extended Version)으로 수록되었다. 원래 나얼이 의도한 곡은 확장 버전이었으니, 필청트랙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가스펠 옴니버스 앨범에 수록되었던 ‘I Surrender All’ 역시 확장버전으로 새롭게 완성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리한 ‘Sound Doctrine’은 이번 앨범에서 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트랙. 앨범의 제목이 된 성경 구절로 실제로 필사하는 소리를 담았다. 동명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나얼은 ‘sound’의 중의적인 뜻에 주목했다. ‘건전한 교리’ 그리고 동시에 ‘소리의 교리’를 이 앨범에 담고자 했다.
나얼은 이번 앨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체적으로 나이에 맞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흑인 음악의 냄새가 많이 나면서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 좋은 멜로디와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전체적으로 통일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자신이 진행했던 라디오 타이틀처럼 “나얼의 음악세계”는 이렇게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흑인 음악으로 가득했고, 그들의 가르침은 ‘doctrine’이 되어 나얼의 음악 세계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나얼을 통해 또 누군가는 그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었던 깊고 원초적인 사운드를 다시금 배워나갈 것이다. 배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담고 있는 ‘doctrine’의 함의처럼... (글/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