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이발관의 이능룡과 못Mot의 이이언이 만든 프로젝트 팀
나이트오프의 첫 번째 EP [마지막 밤]
깊고 까만 밤,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공기의 무게와 질량마저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예민함 사이로 툭, 목소리 하나가 떨어진다. ‘이건 우리가 보내는 마지막 밤이야’ 익숙한 목소리가 주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찰나, 노래가 후두두 쏟아진다. 긴장했던 것 치고는 가만가만 조심스레 흐르는 멜로디와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는 문득 깨닫는다. 아, 이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구나.
[마지막 밤]은 이능룡과 이이언 두 사람이 만나 결성한 그룹 나이트오프의 첫 번째 EP다.
제목은 이들의 만남과 작업을 하나의 여행으로, 그 여행의 마무리이자 증거인 앨범을 여행의 마지막 밤으로 상정해 탄생했다. 여행이 남긴 피곤과 만족감, 마지막 밤이 주는 애틋하고 그리운 감정을 바탕으로 앨범은 여섯 개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늘어놓는다. 지난 6월에서 10월에 걸쳐 선 공개 되었던 곡들을 통해 미리 유추 가능했듯 이들의 음악이 다루는 테마는 무척 다양하다. 삶의 허무를 깨달은 자의 하염없는 넋두리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시들어 가고 싶다는 색다른 접근의 고백, 크게 취한 밤 우연히 벌어진 해프닝이 남기고 간 흔적에 대한 이야기까지. 우리의 일상에 안개처럼 드리워진 희뿌연 이야기들을 밀도 있게 풀어내는 이이언의 작사 능력은 알려진 바 그대로다.
그렇게 장인의 손길로 벼려진 일상의 편린들은 긴장과 배려를 모두 놓지 않는 두 음악가의 성정이 자아낸 깊이 있는 음악 속에 그대로 기분 좋게 녹아 든다. 앨범에 수록된 여섯 곡의 노래는 기존에 없던 완벽히 새로운 음악이라기보다는 이능룡과 이이언이 그간 자신들의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줬던 모습을 느슨하게 연동시킨 모양새에 가깝다. 다만 하나, [마지막 밤]만이 가진 특징이라면 이 앨범이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유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핏 한 번 봐서는 눈치 채기 힘들다. 기타, 베이스, 드럼을 기본으로 피아노와 신서사이저가 과하지 않게 배치된 진중한 사운드, 어둠과 침잠을 기본으로 한 앨범의 전체적인 명도까지 도무지 어디에서 광대를 올려야 할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다시 한 곡 한 곡을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본다. 이들이 호흡을 맞춰 ‘오늘의 날씨는 실패’라며 끝없이 불협화음을 쌓아가거나(‘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속도감 있게 쌓아가던 소리들이 잡음으로 갑작스럽게 뒤틀릴 때(‘우린 매일매일’), 짙은 장막 속 숨겨져 있던 장난스런 얼굴이 문득문득 드러난다.
특유의 음악적 진중함과 두 사람의 ‘케미’가 만나 완성된 앨범은 이능룡과 이이언이 나이트오프라는 그룹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화학작용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나이트오프는 두 사람이 오래 전부터 약속해온 특별한 여행이다. 지금 이 곳을 떠난다는 여행만이 줄 수 있는 해방감을 바탕으로 이들은 ‘나이트오프’라는 이름 안에서 마음 속에만 품고 있던 아이디어나 생각 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 자유롭게 꺼내 이리저리 뒤집고 휘젓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소규모 워크샵에 가까워 보이는 이 여정은 지난 십수 년간 한국음악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꼼꼼한 작업을 이어온 두 영민한 음악가의 과거 행적과 맞물리며 어쩐지 숙연한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겨우 주어진 여행길에서도 도무지 쉬지 못하는 사람들. [마지막 밤]이 ‘여행’을 테마로 한 수많은 앨범이나 본진을 떠난 음악가들이 다소 힘을 빼 편하게 만든 여타 프로젝트 앨범과 전혀 다른 빛을 띄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행이 도무지 여행답지 않은 탓에 자신들이야 한 편으로는 도망치고 싶을 노릇이겠지만 듣는 이에게는 그저 타고난 이야기꾼, 타고난 멜로디 메이커, 타고난 프로듀서들의 경계가 풀린 심도 깊은 한담을 엿보는 듯한 순도 높은 즐거움만이 전해진다. 앨범을 처음 들으며 아, 이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구나 자연스레 설득 당했었던가. 몇 번이고 반복해 더 들어본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토록 절절히 이별과 미련과 구태와 회한을 노래하면서도 아무런 이별도 미련도 구태도 회한도 존재하지 않는 이 절묘한 균형의 음악이 부디 오래 이어지길 절로 바라게 된다. 이렇게 충만하고 즐겁고 바라는 게 많아지는 마지막 밤, 참 드물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