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온스테이지 335번째 한희정]
ONSTAGE. 편견을 딛고 선 리얼 뮤지션
홍대 여신 '한희정'.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쯤부터 한동안 회자되던 이야기다. 본인의 바람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마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도시 전설처럼 '한희정'은 여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인디씬에 등장한 몇몇 동료 여성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홍대 4대 여신이라 지칭되며 이유 없이 외모나 음악 실력을 비교당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꽤나 웃기고 황당한 이야기다. 아니 사실 지금의 상식으로 돌아보면 쓴웃음이 나는 전근대적인 상황이었다. 서로 다른 각자의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던 뮤지션들을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외모가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여신'이라 통칭하고, 대상화하고, 비교하고 재단했다. "외모는 봐줄 만하지만 사실 음악은 별로잖아?", "여신이라는데 사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잖아?" 이런 시선에는 외모와 실력이라는 여성 뮤지션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와 고전적인 편견이 내재해있었고, 그 대상화의 정점에 바로 '한희정'이 있었다.
'한희정'은 억울했다. 슈퍼 동안. 작고 예쁘장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 노래를 할 때 뿜어져 나오는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 매체와 대중은 이런 외연에 집중해 그를 여신 중의 여신으로 칭송했지만, 정작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더더'와 '푸른새벽'의 보컬이었다는 이력은 오히려 그의 존재를 분위기 있고 목소리가 예쁜 보컬로만 국한시키는 근거가 되었고, MOT이나 에피톤 프로젝트와의 뛰어난 협연 역시 그를 고전적인 의미의 '뮤즈'로 이해하게 하는 정도였다. 이해는 바탕이 되는 인식의 체계에서만 가능한데, 시대가 '한희정'을 따라주지 못해서였을까? 2008년 인디씬의 히트곡 '우리 처음 만난 날'이 수록된 정규 1집 [너의 다큐멘트]로 어엿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성공적인 한 발을 내디뎠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은 그를 본격적으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직접 곡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둥, 곡을 써도 부분적으로만 참여했을 거라는 둥, 편곡은 당연히 다른 남자 뮤지션이 해줬을 거라는 둥, 한희정을 '예쁜 여자 보컬'이란 둘레에 가두고 싶어 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답적인 오해와 편견을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여신이란 호칭이자 굴레를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해나 편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 마냥 굴하지 않고 보란 듯이 음악에 집중한다. 거의 매해 EP와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왕성하고 꾸준한 창작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매 앨범마다 사운드적인 측면과 장르적인 실험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포크와 밴드, 오케스트레이션과 아카펠라 등으로 표현 방식을 확장시켜왔다. 이는 단지 스펙트럼 확장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야기를 담아내는 최적의 그릇에 대한 장인으로서의 탐구가 돋보이는 진화였다. 그 결과 한희정은 지난 시절 원치 않게 엮였던 여신들 중 누구보다도 깊고 넓은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고, 같은 시대 인디씬에서 출발한 다른 어떤 아티스트와 견주어도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해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자신감이 최근 악보와 함께 발매한 세 번째 정규앨범 [NOTATE]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기보를 보면 누가 둔 바둑인지 알 수 있듯이 악보를 드러낸다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수를 다 보여주는 것이다. 보통 자신감이 아니다.
이번 온스테이지는 그간 편견을 딛고 성장한 한희정의 음악적 내공뿐만 아니라 여전히 실험과 탐구를 통해 진화를 거듭하는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무대다. '잔혹한 여행'은 '한희정'의 시작이자 본질이 기타 하나와 목소리의 공명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흙'은 오직 자신의 손발을 사용해 디스코 리듬을 재현해내고 건반 연주자가 코드 플레이를 배제하면서까지 단출하게 연주하도록 해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느낌의 창의적인 무대를 만들어낸다. 특히 '흙'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모자를 쓴 채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리듬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을 넘나드는 연극적 재미까지 선사하며 그의 연출가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마지막 곡 '이 노래를 부탁해'에서는 첼로와 바이올린과의 협연을 흡사 지휘하듯 노래하는데, 현악기의 선율 사이를 들고 나는 한희정의 목소리는 마치 작은 새가 바람에 따라 때론 비상하고 때론 활공하듯 어지럽고 아찔한 곡선을 그린다. 어쩌면 그렇게 여린 목소리로 단단하고 강한 세계를 만들어 온 건지. 음률 사이로 시야가 아득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