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초월 아티스트 정혜선 3집
90년대초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진 가수 정혜선이 3집 [시공초월]로 돌아왔다.
정혜선은 제1회 유재하가요제 은상을 수상 후 故조동진이 이끌던 음반기획사 하나음악에 픽업돼 데뷔했다.
유재하가요제, 하나음악 출신이라고는 믿기 힘든 독특한 음악을 선보인 그녀의 1, 2집은
지금 음반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전설의 명반이다.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음색, 창법, 악곡으로 큰 주목과 찬사를 받았던 록커이자 싱어송라이터였으나
갑자기 활동을 중단해 그 이유를 많이들 궁금해했다.
긴 세월이 지나 새로 들고 나온 3집의 음악은 전보다 더욱 신선하다.
안전하게 원래 하던 음악으로 기존 팬들을 만족시킬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대표적으로 현재 가장 대세이자 뚜렷한 경향인 전자음악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중견뮤지션이 자신이 젊은 감각을 지녔음을 과시하려 할 때 수박 겉핥기식으로 맛만 보여주거나
어울리지도 않는 시도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정혜선이 들려주는 전자음악 사운드와 편곡은
그녀의 음악세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젊고 힙하다는 뮤지션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세련미와 감각을 지녔다.
이 앨범에는 정혜선이 활동을 멈추고 음악계로부터 멀어진 후 나타난 사조인 얼터너티브, 모던록 계열의 악곡, 사운드작법도 많이 등장한다.
활동은 중단했지만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앨범은 중견뮤지션으로서 원숙미를 어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그동안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계속 노력한 뮤지션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수록곡 모두 자작곡으로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여러 스타일의 음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음반이 진행된다.
좀 처럼 지루하거나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혜선이 쓰는 가사는 개인의 감상, 인생철학, 사회적 이슈등 다양한 주제를
때론 진지하게 무겁게 때론 재밌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좋은 가사를 쓰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는 노랫말이다.
예측불허 : 더 없이 세련된 일렉트로닉팝이다. 라운지바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그루브를 타면 좋을 듯한 매력적인 넘버.
곡도 훌륭하지만 Curious의 뛰어난 미디편곡이 빛을 발한다. 거기에다 푸틴과 알랭드보통이 등장하는 가사까지........그야말로 예측불허!
반면교사 : 몽환적인 전자음을 배경으로 재치있는 가사와 마치 랩을 하듯 읊조리는 독특한 창법을 들려준다.
랩의 라임처럼 운을 맞춘 후렴구 가사가 계속 입에 붙어 따라하게 되는 치명적 매력을 지녔다.
프로듀서 GLABINGO의 뛰어난 감각이 돋보인다.
내 옆자리 : 3집에서 가장 기존 가요발라드에 가까운 애절한 곡.
음악감독 박인영의 스트링편곡과 김성윤의 피아노 반주가 정혜선의 구슬픈 보컬을 잘 받쳐주고 있다.
어쩌라고 : 청년실업과 비혼, 가난과 불량식품등 시사적 이슈를 유머러스한 가사와 재치있는 나레이션으로 집어낸 미디엄테포의 모던록.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냈다.
나타나줘 :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애타게 갈구하는 러브송.
역시 프로듀서 GLABINGO의 심플하지만 감각적이고 세련된 편곡이 돋보인다.
소용돌이 : 어둡고 슬픈 분위기로 진행되다 후반에 제목처럼 세차게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처럼 마무리되는 록발라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혜선의 독특한 창법이 가장 두드러진 곡.
공기질 : 무엇보다 대기오염과 개인의 성향, 취향을 연결한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일거양득, 일타쌍피를 거둔 아이디어와 유머, 위트에 감탄이 나온다.
좋았던 시절 브릿팝을 떠올리게 하는 몽환적인 연주가 매력적이다.
안젤리나 : 간간이 들리는 휘파람 소리가 상징하듯 처량하고 애절한 분위기의 록발라드.
마치 오랜 기간 같이 활동한 밴드처럼 뛰어난 앙상블을 들려주는 세션맨들의 연주실력이 빛나는 곡이다.
정혜선은 오랜 기간 대중과 떨어져 있었으나 조용히 창작열을 불태우며 자신의 감성과 표현욕구를 숙성시켜온 듯하다.
이제 그 결과물들이 익을 만큼 익어서 이 음반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귀환을 환영하며 이제 떠나지 말고 우리 곁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정원석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