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채 (Min Chae)' [온스테이지 313번째 민채]
ONSTAGE. 목소리의 표정
'민채'의 목소리에는 묘한 나른함이 있다. 2014년 4월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음반 [Shine On Me]에서부터 이 나른함은 도드라진다. '민채' 보컬의 나른한 스타일은 목소리에 일관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여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 있을 것 같은 거리감, 그러거나 말거나 다 귀찮다는 지루함과 비관주의, 그런데도 전혀 괘념치 않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얼마쯤의 퇴폐적이고 육감적인 느낌까지가 모두 이 목소리에 담겨있다.
사실 음악에서 음색은 음악이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표이다. 연극으로 치면 다급하게, 라거나 열정적으로, 라거나 슬픔에 젖어서, 같은 식의 구체적인 지문을 부여받은 듯한 정서가 음과 소리의 질감으로 표현된다. 멜로디와 비트, 화음이 음악의 뼈와 살을 만들어낸다면 음색은 음악에 표정과 눈빛을 불어넣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기쁘다고 해서 다 똑같이 기쁜 것이 아니고, 슬프다고 해서 다 똑같이 슬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채'의 목소리를 통해 민채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만남과 동시에 민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목소리의 질감으로 드러내는 삶에 대한 태도와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한 번쯤은 우리의 얼굴에도 스치고 지나갔을 표정이다.
장르로 치면 '민채'의 음악은 팝재즈이다. 재즈는 재즈이되 재즈의 특징인 스윙과 즉흥연주를 강조하지 않고, 팝의 고전적인 형식을 결합함으로써 문턱을 낮춘 음악.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게 하면서도 재즈의 여운을 느낄 수 있게 한 음악 말이다. '민채'는 이번 온스테이지 영상을 통해 3곡의 노래를 선보이며 각기 다른 악기 편성으로 팝재즈가 재현할 수 있는 여러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각각의 곡은 팝재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과정인 동시에 '민채'의 목소리가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와 표현의 가능성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첫 번째 곡 "하루"는 가장 많은 연주자들이 함께 했다. 피아노,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의 7인조 편성이다. 최근 발표한 싱글이기도 한 이 곡을 주도하는 것은 관악 파트가 표현한 상큼한 낙관주의와 일렉트릭 기타의 펑키한 잔재미이다.
이미 전주에서부터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 같은 곡은 '하루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 / 어제와 다른 나의 모습을 / 다시 난 찾아갈거야'라는 다짐으로 나아간다. 여기에 중간 간주에서 트럼펫의 솔로 연주는 자칫 단순하게 들릴 수 있는 곡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불어넣고, '민채'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가치를 산뜻하게 부각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루'는 많은 이들의 자화상 같고 진솔한 응원가 같은 곡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곡 "다른 곳을 바라보던 우리"에서 '민채'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어쿠스틱 기타, 드럼 편성으로 비로소 예의 나른한 보컬 스타일을 드러낸다. '애틋한 눈물도 이제 조금씩 말라가는' 이별의 길목에서 '민채'의 목소리는 그 연약함으로 이별을 앞둔 슬픔마저 달콤하게 만들어버린다. 그 달콤함은 자기애와 무관하지 않고, 사랑에 대한 낭만적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슬픔의 달콤함이라는 이중적 서술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자의식을 깊이 드러내는데 이는 '민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표현이다. 재즈 스탠다드 곡인 "I fall in love too easily" 역시 '민채'의 목소리로 노래가 되면서 탄식에 가까운 자기애가 더욱 탐미적으로 도드라진다. 오직 원영조의 피아노 연주만으로 뒷받침되는 노래는 여린 듯 하면서도 고혹적인 '민채'의 보컬로 인해 노래 속 자아의 떨림과 미숙함까지 아름답게 만들어버렸다.
섬세하게 음을 채우며 보컬과 같은 정서로 보컬이 부각되도록 연출해냄으로써 노래의 서사를 완성하는 '원영조'의 피아노 연주가 한몸처럼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민채'는 자신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드러냈고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개성을 확인시켰다. 이제 기억해야 할 뮤지션의 이름이 하나 더 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