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제대로 된 레게 음악
"우리에게 재즈는 없다. 그렇다면 로크(Rock)는? 한국의 로크 뮤직은 있었던가?"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의 라이너 노트는 이렇게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신중현과 엽전들 음악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동안 한국엔 제대로 된 로크 뮤직과 재즈 뮤직이 없었다는 도발적인 명제로 문장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걸 레게로 대입시키면 어떨까? "그렇다면 레게는? 한국의 레게 뮤직은 있었던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난 루드페이퍼의 이름을, 그리고 작년에 나온 그들의 두 번째 앨범 [Destroy Babylon]을 슬며시 꺼낼 것이다.
한국에도 레게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김건모'의 "핑계"를 필두로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같은 노래들이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음악의 신' '이상민'이 이끌던 '룰라'의 이름은 무려 '레게의 뿌리'(Roots of Reggae)란 뜻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레게 열풍의 중심에 레게의 본질은 없었다. "레게의 열정을 입는다"는 티피코시 의류 브랜드의 강렬한 원색 디자인이나 드레드록스 같은 외형적인 이미지만을 차용해왔다. '닥터 레게', '스컬' 같은 음악가들이 제대로 된 레게를 들려주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했지만 완성도란 측면에서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루드페이퍼'의 [Destroy Babylon]은 작년 가장 과소평가 받은 앨범이었다. 과소평가란 말을 꺼내기도 민망할 만큼 (음악관계자들조차도) [Destroy Babylon]이란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홍보의 문제도 물론 있었겠지만 한국에서 레게란 장르 음악이 갖고 있는 지분이 그 정도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루드페이퍼'는 지금 그 협소한 한국의 레게 시장에서 꾸준하게 활동하며 전 세계의 레게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있는 팀이다. [Paper Spectrum](2012)과 [Destroy Babylon]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레게 동네에서 입지를 탄탄히 하였고, 자메이카뿐 아니라 아시아의 레게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아시아 레게'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쿤타'와 '리얼드리머'(RD). 각각 '쿤타 앤 뉴올리언스'의 보컬리스트로, 'URD'의 프로듀서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두 음악가는 레게를 매개로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케보(Kevon)'이 합류하며 3인조 밴드로 재편했다. [Destroy Babylon]은 자메이카 현지에서 녹음하고 현지의 음악가들이 작업에 참여했지만 한국에도 '루드페이퍼'의 음악을 이해하고 함께해주는 음악동료들이 있다. 그 동료들과 온스테이지 촬영을 함께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브라스 사운드와 함께 '루드페이퍼'가 발산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맞물린다.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쿤타'의 보컬은 '루드페이퍼'의 음악을 여타 레게의 이름을 내건 음악과 확실하게 차별화한다. 모든 관계에서 오는 소중함을 노래한 "꿈이라도 좋아"도, '조쉬로이'가 선동하듯 소리치는 "Fight Like The Lion"도 '루드페이퍼'가 갖고 있는 다양함 가운데 하나다.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보고 메시지를 곱씹자. 레게는 현란한 옷을 입고 머리만 땋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여름 한 철 음악도 아니다. 루드페이퍼의 음악이 이를 말해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