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검붉은 진짜의 유혹
진짜란 뭘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꾸밈없이 참된, 거짓이 아닌 것. 발음과 모양새만 봐서는 어딘지 의심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어디든 이 단어가 붙으면 대상에 대한 신뢰도가 몇 배는 상승하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커피, 진짜 사랑, 진짜 여행, 진짜 음악.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꾸밈 당하는 말의 의미가 갑작스레 묵직해지는 마법 같은 효과다. 그렇게 타고난 존재감의 반작용일까, 진짜는 너무 자주 쓰이면 금세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대표적인 단어이자 그만큼 흔치 않은 존재이기도 하다. 평범의 늪에 빠진 유수의 창작자들은 물론 독보적이다, 독특하다는 수식어가 결코 빠지지 않는 개성 있는 래퍼 '김아일'에게도 이 진짜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다. 내 안의 진짜를 만나기 100미터 전, '김아일'은 바로 지금 그곳에 서 있다.
'김아일'의 음악과 함께 그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유독 진짜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독보적인 무언가, 진짜, 리얼(REAL). '게리스 아일(Gehrith Isle)'이라는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군 제대 후 복귀작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래퍼 '김아일'이 추구해 온 제1의 가치는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힙합 음악가와도 쉽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김아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악적 색깔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활동 초반, 가늘고 뒤틀린 톤과 플로우 탓에 'ATCQ(A Tribe Called Quest)'의 멤버 '큐 팁(Q-Tip)'이 간간이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그를 규정하거나 가둬온 수식어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범상치 않은 건 스타일뿐만이 아니다. 협연하는 아티스트들의 면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힙합의 영역에서 한참이나 벗어나있다. '시모(SIMO)', '이안 캐시(Ian Ka$h)', '윤석철 트리오', '버벌진트(Verbal Jint)', '혁오', '신세하', '피제이(Peejay)' 그리고 '현아'. '김아일'과 합을 맞춰온 음악가들의 이름들 속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점이란 장르나 분야가 아닌 색깔이었다. 재즈든 케이팝이든, 힙합이든 록이든 상관없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음악가냐 아니냐, 그들이 가진 파장이 자신과 어울리느냐 아니냐. '김아일'과의 협업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단 그 두 가지뿐이었고 결과물은 늘 준수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힙합 크루 '벅와일즈'에 적을 두고 활동하던 시절부터 진짜 '김아일'을 찾아가는 여정 위에 서 있는 지금까지 그의 음악이 한 번도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보여준 이상의 품이란 그렇게 한결같았다.
온스테이지를 통해 '김아일'이라는 사람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 그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신곡들로 라인업을 모두 채웠다. 위험할 수도 있는 결코 흔치 않은 선택이지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흐르는 검붉은 영상의 물결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왜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렸는지 조금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이는 노래들 속, 메시지나 딜리버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스타일과 바이브를 중시하는 '김아일' 특유의 래핑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음악과 얽혀 들어간다. 퍼커션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기본 리듬 위를 멋대로 훑어 내리는 그의 목소리는 비트 위를 흐른다기보다는 그와 하나가 되어 너울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특히 마지막 곡 "Magic Glue"는 '김아일'의 내일이 궁금한 이들에게 더없이 흥미로운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손을 맡긴 채 눈을 감고 걷는 상상을 콘셉트화해 만들었다는 이 노래는 그간 '김아일'이 그려왔던 심상이 남긴 흔적을 꼼꼼히 따르면서도 지금껏 어디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묘한 음악적 합일의 순간을 선사한다. 지금 흐르는 이 노래들이 '김아일'의 진짜라면, 기꺼이 그 피리 소리를 따를 일이다. 거듭 말하듯, 이런 진짜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