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설빈 2집 [노래는 저 멀리]: 노래가 간다
여기, 노래가 있다. 우리를 자라게 한 여느 노래들처럼 친숙한 문장들에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한 선율에 실려 흐르는 순한 노래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도 노래를 닮았다. 조심스럽게 하나 둘,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목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단어와 음표를 엮어낸다.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베이스, 가끔 전자 기타와 클라리넷 연주가 묵묵히 그 뒤를 따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꽤나 묵직한 노래는 어디론가 간다. 무엇을 위해 가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가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는 듯 느리게 발걸음을 옮긴다. 스스로 운명을 찾아, 그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의 두 번째 앨범 [노래는 저 멀리]는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노래 열 곡이 담긴 앨범이다. 2017년 [모든, 어울린 삶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한 이후 꾸준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자신들의 음악을 꼭 닮은 활동을 보여준 이들이 지난 2년간 다듬은 소리들을 소담스레 모은 한 장이다. 모인 모양새는 여전히 순하지만, 이제 이들은 그렇게 모인 노래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만은 않는다. 첫 곡 ‘그곳에 노래를’로 시작해 ‘노래는 저 멀리’로 끝나는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끔은 집요할 정도로 자신들이 만들어 낸 노래의 행방을 뒤쫓는다. 앨범은 한없이 덧없이 들리고 멈추는 노래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노래가 보내는 희미한 생존신고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다. ‘노래는 저 멀리 사라지려 해 / 갈 곳 없는 맘에 다시 찾아 와’. (‘노래는 저 멀리’)
자신들이 빚어낸 노래에 대한 이토록 강한 책임감과 살뜰한 보살핌은 그대로 노래 하나하나가 가진 단단함과 자신감으로 연결되었다. 첫 앨범에서 ‘존 레논, 밥 딜런, 한대수, 김민기처럼 노래하고 싶다’는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던 이들은 이제 [노래는 저 멀리]를 통해 보다 명징하게 자신들의 소리를 세상으로 쏘아 올린다. [노래는 저 멀리]는 선망하는 대상에 가까이 닿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보다는 자신들의 목소리와 속도로 노래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리는 앨범이다. 마음 바닥이 전부 보일 정도로 온통 깨끗하게 노래하던 이들은 더 이상 없다. 내내 곧고 바른 그들만의 자세 그대로, 묵직한 무게추가 하나씩 더해진다.
결코 만만치 않은 무게를 모두 감당하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이끈 건 여유와 설빈 두 사람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성장, 그리고 앨범 전반의 만듦새에 힘을 보탠 음악가 김해원의 힘이다. 공동 프로듀싱은 물론 믹싱까지 담당하며 앨범 안팎을 살뜰히 돌본 김해원 특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텍스쳐는 여유와 설빈의 세계가 가진 투명함에 얇은 막을 입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솔직한 사랑의 고백에 진득한 허무가 어리고, 여전히 거짓 없는 마음을 노래하지만 가진 패는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 네 번째 트랙인 ‘선인장’, 여섯 번째 트랙 ‘동아줄’ 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너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알 수 없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미로 속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동아줄’), 상대를 안으면 안을수록 깊이 박히는 가시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는(‘선인장’) 화자는 그동안 여유와 설빈이 들려줬던 그 어떤 노래보다 적극적으로 내면에 도사린 허무와 아픔을 호소한다. 그를 담는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베이스 노선택(노선택과 소울소스), 드럼 김창원(세이수미) 등 색깔 있는 음악가들의 든든한 지원 아래, 노래는 그 언제보다 더 멀고 깊은 곳으로 점점이 퍼져 나간다.
여유와 설빈의 음악을 들으면 절로 떠오르는 표현들이 있다. 진실하다, 순하다, 맑다. 가끔, 한없이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 이 말들이 그 의미대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나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해도 소용없는 고민을 뒤로 하고, 이들의 노래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도 여전히 순하고 맑으며 진실하게 걷고 또 걸어갈 것이다. 그 믿음직한 껍질 속 찬찬히 영글어 가는 속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앨범의 마지막,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합창을 들으며 또 다시 답 없는 생각에 잠긴다. 드물어 소중한 이 움직임을 가능한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고.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