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사람들 속 너와 나, 그리고 우리 - 나상현씨밴드 첫 번째 정규 앨범 [우리]
나상현씨밴드는 2014년 7월 한 번의 공연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끼리 나상현씨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었다. 하지만 한 번으로 그치기엔 나상현씨의 노래가 관객들의 마음에 가득 들이찼고, 이 밴드는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2014년 11월 [늦은 새벽]을 시작으로, 2015년 4월 EP [찌릿찌릿], 2016년 3월 EP [불장난]을 발표하며 신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개러지 락을 표방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왔고, ‘아리송해’, ‘뿌리염색’ 등 락킹하고 직선적인 사운드를 통해 그들은 락 밴드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역으로 인한 2년간의 공백기 이후 2019년 1월 [각자의 밤]으로 돌아온 그들은, 같은 해 4월 싱글 [그대]를 발표하며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한껏 힘을 뺀 나상현씨의 보컬과 팝적인 요소를 대폭 가미한 편곡은, 지난 시절 발매했던 그들의 작업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들려준다. 나상현씨밴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우리]는 그러한 그들의 새로운 시도에의 의지를 한껏 담고 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모두가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나상현씨밴드 음악의 기본 기조는 유지한 채로, 조금은 철이 들고, 조금은 진지해진 10곡의 보통 노래들로 채운 그들의 정규 앨범 [우리]다.
01. 손
[우리]의 인트로격으로, 촉촉한 기타 리프와 공간감, 코러스 톤이 이끌어가는 곡. 각자는 완벽하지 않지만, 둘이 만나 우리가 될 때 서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위로를 받는다.
02. 미소
누군가의 미소가 자꾸 떠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미소’는 단 두 줄의 가사를 반복하면서 곡 안에서의 사운드 변화를 통해 진행된다. 특히 2절 후렴구에서 강해지는 드럼과 기타의 변주, 마지막 부분의 브라스 편곡이 인상적인데, 그 미소에 완전히 홀려버린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듯 세게 휘몰아친다.
03. 디-데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발랄하고 신나는 나상현씨밴드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후크성 진한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전면에 부각된 기타 리프는 이 노래가 나상현씨밴드의 노래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그대를 다시 볼 디-데이를 기다린다는 곡의 주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설렘을 담았다. 또한 선명한 보컬을 부각하여, 팝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깔끔한 믹싱이 인상적인데, 연주나 라이브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운드적으로도 크게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관객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전부 들어간 곡.
04. 웅크리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 그런 속에서 계속 작아지고 웅크리는 나. 찾아오는 모든 순간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두 떠나가 버리고 다 잊혀진다. 그러한 잊혀진 것들에 대한 소회를, 약간은 냉소적으로 중독적인 리프와 반복적인 가사 위에 담은 곡.
05. 사실
이번 앨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짧은 스킷 형식의 곡으로, 인트로 격이었던 ‘손’과 사운드적인 특성을 같이 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아둔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이 될 수도, 자신이 준비했던 진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자신이 사라지곤 한다. 그 허탈한 감정을 담은 노래. 마지막 부분의 베이스 솔로라인이 그 허탈함을 극대화한다.
06. 그대
지난 4월 발매된 정규 선공개 싱글 [그대]를 약간의 믹싱 및 마스터링 수정을 거쳐 정규앨범에 다시 담았다. ‘그대’는 사랑노래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저 연인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노래에서 ‘그대’는 친구가 될 수도, 연인이 될 수도, 다른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듣는 이에 따라서 이 노래의 의미는 무한하게 변화하고, 결국 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로 귀결된다. 직설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것은, 청취자가 자신의 기준에 맞춰 ‘그대’를 들음으로써 곡을 비로소 완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07. 진심
‘진심’, sincerity. 이 두 단어의 어감은 한국어로나 영어로나, 꽤나 긍정적인 축에 속한다. 하지만 너에 대한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우리의 관계 속에서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진심’을 전할 수 없고 그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을 섬세한 보컬 라인과 코러스로 표현하였다. 중간에 삽입된 멋을 부리지 않은, 쓸쓸한 톤의 기타 솔로도 이 곡의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08. 둘이서
‘둘이서’는 이번 앨범의 트랙리스트 중 가장 직설적인 사랑 노래이다. ‘너와 함께’ 함으로써 매 순간은 소중한 순간이 되고, 그 순간을 너의 눈을 바라보며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서로가 서로에게만 집중함으로써 다른 복잡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로를 오롯이 사랑하고 싶다는 열렬한 사랑고백. 또한 이 곡은 이번 앨범 중 가장 나상현씨밴드의 예전 모습에 가깝게, 락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편곡과 믹싱이 돋보인다. 노래를 마무리하는 드라이브톤의 기타 연주는 개러지 락-나상현씨밴드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예전 그 느낌’을 선사한다.
09. 우리 (feat. 손효진 of 문없는집)
앨범 제목과 동일한 서브타이틀곡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간의 관계를 묘사한 곡이다.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1절과 2절이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초반부의 화자는 웃으려 하지만 웃지 못하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의심한다. 반면 후반부의 화자는 울려고 하지만 울지 못하고, ‘우리’의 추억을 회상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이유로든, 서로는 서로에게 돌아간다. 서로 반대의 생각을 하면서도 지속되는 관계를 나타내는 아이러니가 노랫말을 듣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특한 음색을 지닌 손효진(밴드 문없는집의 보컬)의 피쳐링은, 이 곡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는 장치이다. 두 보컬의 파트 별로 같은 멜로디, 같은 가사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청자로 하여금 같은 노래 안에서 갈라지는 두 화자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10. 오늘도
앨범의 마지막 곡인 ‘오늘도’는 흐르는 하루하루 속에서 매일 무언가 달라지길 기다리고 바라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노래한 곡이다. 흔히 우리들은 내일부터는 무엇인가 하길 다짐하고, 내일이 되면 어떻게든 상황이 좋아질 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실현되지 못한 다짐들과 기대들을 잊고 지내다 보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 새로운 내일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는 이런 사람들 모두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오늘도 기다리고 있으니.
글 – 진우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