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없는집 [문없는집]
어떤 날 찍었던 모든 사진들이 그날의 최고의 순간만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사진들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그날을 다시 재조립하여 자신만의 기억으로 저장하게 된다. [문없는집]은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으로 재조립될 수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일상과 상상이 마주친 순간을 노래하는 밴드 문없는집의 첫 번째 EP앨범 [문없는집]은 하나의 통일된 음악적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담았다. ‘새벽’에서는 고요와 긴장을 동시에 담은 몽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다가도, ‘콘크리트연애’에서는 쫀득한 도입부 리듬과 후렴에서의 퍼레이드 같은 멜로디로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음악들은 한마디로 정의해 칭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모두에게 색다르게 다가갈 수 있는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없는집]에는 새벽과 밤과 낮, 어떤 축제, 비 오는 날의 단편들이 사진첩처럼 실려 있다.
1번 트랙 ‘새벽’은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찰나를,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비유를 담았다. 어떤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거나 궁금해하지 않아도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디스코’는 소중한 것을 잊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다시 마주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연극의 막이 바뀌듯이 돌이킬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지만, 그 순간 함께하는 이들의 눈을 보면 흔들림은 멈춘다. ‘Happyhappyhappylife’ 역시 ‘지금, 이 순간은 끝내 영원할 거야’라는 가사에서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에는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지금만큼은 확실히 즐거운 현재이다. 그 다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말’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말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통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콘크리트연애’에서는 흐린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도시의 낭만적인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나는 너와’에서는 함께해온 순간들을 다시 추적해가는 어느 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너와’를 듣다 보면 밤의 다리를 따라 함께 건너가는 기분이 드는데, 이러한 산책에서 누군가와 함께 같은 길을 걸었다가, 다시 갈라섰다가, 언젠가 기약 없는 날에 마주치기도 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지도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문없는집의 이번 EP앨범 [문없는집]은 그런 ‘지금’들을 그들 나름의 언어로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