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은 있지만 첫 번째 싱글
스물 아홉살을 한 달 앞둔 작년 12월, 메아리님께 피아노 레슨을 문의 드렸다. 랩을 한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뮤지션임에도 나는 ‘도미솔’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음알못이었다. 늘 마음 한 켠에는 화성학 공부에 대한 열망과, 음악을 공부하는 학교를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한 열등감 같은 것이 공존했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하면서도 그 사람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해줬으면 좋겠는지를 말할 수 없었고 그저 늘 잘 부탁드렸다. 나에게 피아노란, 음을 다루는 일이란 텅 빈 사과를 끝내 채우지 못하고 피아노 학원을 관두며 걸린 저주였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봉인이었다. 그래도
늦은 감은 있지만 피아노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보고 자란 랩퍼의 삶은 연예인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의 젊음이 음악과 함께 소모되면 어디서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누구는 대형 연예기획사의 랩 지도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기획사를 차려 소모될 젊음들을 모았다면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0대 후반 여성이 공통적으로 가진 ‘서른 너머의 삶’에 대한 공포는 나에게도 분명 존재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이없을 만큼 노후를 걱정했다. 아티스트 ‘슬릭’은 소모될 것보다 소모된 것이 많다고 세뇌된 후 그나마 안정적인 직종을 찾아 ‘랩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 나는 이제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는 것.
피아노 레슨은 어렵고 재미있었다. 배운 적은 없어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짬으로 얻은 음악적 감각들이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화성학보다 훨씬 커다랗고 멋진 것을 발견했다. 쫄지 않고 피아니스트와 대화할 수 있었다. 거리낌 없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멋대로 이름 붙인 내 음악에 대해서 부끄러움 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아홉 살의 나보다 스물 아홉 살의 내가 가진 물음표가 몇천 개는 더 많았다. 다행히 메아리님도 내가 멋대로 해버린 음악들을 흥미로워 하셨다. 메아리님은 나에게 깊고 복잡하지만 이해하고 나면 그 아름다움에 놀라는 노래들을, 나는 메아리님께 다이아 박힌 보석함에 담긴 플라스틱 귀걸이같이 하찮고 귀여운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늦은 감은 있지만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는 아이돌이 될 예정이다.
어이없는 굿즈도 팔고 멋진 의상도 맞춰 입을 예정이기도 하지만
늦은 감 때문에 새로워지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것이다.
왜냐면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런 음악이 필요했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하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