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출신入古出新.
중국의 모든 옛 필법과 금석학을 깊이 연구하고 탁마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창안해낸 추사 김정희의 예술정신을 일컬어 흔히 쓰는 말입니다.
고전으로 들어가 새것으로 나온다는 뜻으로 흔히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법도에 구속되지 말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연암 박지원도 옛것을 본받되 무작정 따르기만 하고 새것을 만들되 근본이 없음을 경계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다. 썩은 흙에서 지초가 돋아나고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생겨난다.”.
바라지의 음악정신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전통음악을 깊게 공부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근본 없이 비루해지지 않고자 합니다.
1집 [비손]에 이어 2집 [입고출신]또한 이러한 원칙에서 출발하였고, 우리 전통음악의 정수인 판소리와 산조, 무속악 속으로 들어가 가락을 추려 다듬고 새로 꾸며 세상에 내놓습니다.
부디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아야 한다는 추사와 연암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았길 바랍니다.
[TRACK]
01. 휘산조 | Hwisanjo | 작곡 : 한승석, 바라지 | 장구 : 강민수
빠르고 경쾌한 4/4박자의 기악합주곡이다.
'휘'는 '빠르게 몰아친다'는 의미이며, '산조'는 '허튼가락'을 뜻한다.
김병호, 성금연, 유대봉, 백인영 선생의 가락을 바탕으로,
가야금 세 대가 주선율을 이끌고 아쟁, 해금, 태평소가 가야금을 도와 끌어주고 밀어준다.
산조의 변청을 활용하여 다양하게 짠 선율을 동해안별신굿 장고가락 위에 얹음으로써
변화무쌍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적 흥취를 느낄 수 있다.
02. 생!사고락1(生!四鼓樂1) | Four Singing Drummers1 | 편곡 : 한승석, 바라지 | 소리, 북 : 강민수, 김태영, 조성재, 정광윤
[생!사고락生!四鼓樂]은 “생생함이 넘치는 네 고수의 북 가락”이란 뜻으로 새롭게 만든 말이다.
소리북은 섬세하고도 무겁고 깊은 울림을 가지면서 힘과 신명 또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타악기이다.
이러한 소리북의 특징은 북 자체만의 연주보다는 소리꾼의 소리와 결합될 때 확실하게 드러나는데,
바라지의 [생!사고락]은 네 명의 고수가 직접 소리를 하며 동시에 북을 연주함으로써 소리북의 매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강도근制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휘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중중모리 등으로 변형시켜 다양한 북가락을 선보인다.
03. 별신축원 | Prayer of Blessing | 작곡 : 한승석, 바라지 | 작사 : 한승석 | 장구 : 김태영 | 징 : 정광윤 | 소리 : 한승석, 김율희
동해안별신굿의 천왕굿을 기본 틀로 삼고 경기도당굿, 비나리 사설을 덧보태 만든 작품이다.
도당굿의 도살풀이 청배를 새로 짜서 도입부로 삼고, 별신굿의 청보2장과 3장은 비나리의 일년도액풀이 사설로 소리를 짰으며, 청보4,5장은 기존 사설에 새로 쓴 가사를 더해 작창하였다.
소리와 타악으로만 연행되던 복잡한 장단구조의 별신굿에 기악선율을 얹어 음악적 풍성함을 더하고,
이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쓴 액살풀이와 축원 사설로 사람들의 복된 삶을 축원하는 것에 이 곡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04. 생!사고락2(生!四鼓樂2) | Four Singing Drummers2 | 편곡 : 한승석, 바라지 | 소리, 북 : 강민수, 김태영, 조성재, 정광윤
[생!사고락1]과 마찬가지로 강도근制 흥보가와 네 개의 소리북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는 여정을 묘사한 「제비노정기」를 중심으로 짜인 [생!사고락1]에 이어 [생!사고락2]는 흥보가 박을 타서 부자가 되는 「박 타는 대목」과 「밥 먹는 대목」을 활용해 작품을 구성하였다.
네 연주자의 화려한 북가락과 힘찬 소리, 능청스런 연기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한다.
05. 진혼(鎭魂) | Requiem from Jindo | 편곡 : 한승석 | 장구 : 김태영 | 징 : 강민수 | 소리 : 김율희
죽은 자의 넋을 달래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산 자의 마음은 동서가 다르지 않고 고금에 변함이 없다.
아득한 옛적에 불리던 한국의 대표적 진혼곡 진도씻김굿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불리는 이유이다.
[진혼鎭魂]은 씻김굿 중 초가망석, 영돗말이, 넋풀이, 넋건지기, 질닦음 거리를 활용해 틀을 짜고,
진도소리의 대가였던 박병천, 김대례, 이완순 선생의 소리를 가려 뽑아 재구성하여 음악의 밀도를 높였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힘든 사설을 맥락에 맞게 과감히 바꾸고 씻김굿 어법으로 새로이 짠 것 또한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창작정신에 바탕한 시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