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적 응원가, 코가손 정규 2집 [모든 소설]
[모든 소설]은 기왕이면 날이 좋은 정오에, 볕이 들지 않는 벽 뒤에 숨어서, 내 쪽으로 옮겨지는 빛을 자꾸만 피하며, 마지막 남은 커피를 미소와 함께 머금으며 듣고 싶은 노래 행렬이다. 어디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한 바퀴의 앨범이다.
언제부턴가 오후가 돼서야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때론 그 이유만으로 하루가 쉽게 망가졌다. 어쩌다가 매일 지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걸까? 아니 어째서 쉽게 지각생으로 나를 몰아버린 걸까? 그런데 코가손이 부르는 “결국 돌고 돌아 처음을 마주한” 멜로디가 꾸준했던 나의 자책을 무용하게 한다. 내 삶이 한 권의 소설책이라면, 아마도 2/3 지점쯤부터 대뜸 1페이지라 표시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아리송하게 읽다 보면 그제서야 첫 퍼즐이 겨우 맞춰지는, 뒤늦게 시작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 우리들 모두의 소설은 그렇지 않을까.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의 하루는 그렇지 않을까.
낯선 골목에서도 고개를 들면 그 길의 모퉁이가 보인다. 코가손은 느지막이 만난 모퉁이에서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오후의 낮고 노란 볕을 닮은 짧은 응원을 보내온다. 이 응원은 반짝거려서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있는 곳을 분명히 밝혀 준다. ‘반짝인다’는 말은 빛과 어둠과 잠깐이 공존한다는 점에서도 코가손의 노래와 닮았다. 가라앉거나, 또다시 늦었거나, 내 편을 자꾸만 들어 게을러져 버렸거나, 이내 지웠거나, 무거워서 포기했거나, 놓쳐 버린 웃음 따위에 이제는 등을 지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모든 처음을 반가워하는 자세로 늦은 시작을 도모해볼까. 그렇게 느리게 뛰는 “모든 소설”이 꾸린 한 바퀴 행렬에 기운을 낸다면, 나는 어쩌면 앞으로 마주할 내 하루를 지긋이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그저 시작에만 집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고개를 들어보면 어떨까. 코가손의 멜로디는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쑥스러워지지 않는, 기운 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적 응원가다. 어떤 곡이든 오늘에 맞는 시작이 될 테다.
글. 임진아
: 누군가의 어느 날과 닮아 있는 순간을 그리거나 씁니다. 때때로 삽화가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가 있습니다. (www.imyang.net, @IMJINA_PAP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