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커튼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소리의 침묵을 향해
*명상하듯이 느리게 Una lentezza meditata
이제니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목소리로 가득 찬 공간이 있다. 소리 혹은 침묵. 침묵 혹은 소리. 소리의 침묵을 향해 아니, 침묵의 소리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음률들. 수상한 커튼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다른 시간의 방향성을 경험하게 한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나선 혹은 파선으로 회절 되며 쌓여가는 시간들. 지나간 과거와 이제 막 도착한 현재와 오지 않은 미래를 동시에 겹쳐서 감각하게 하는 목소리. 그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언제고 가슴 아프게 떠올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 이 현재를 담담히 걸어가는 사람의 목소리이다. 시간은 하염없이 하릴없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돌이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다시금 되돌아가서 빛나는 무엇으로, 잊고 있었던 사랑했던 얼굴을 다시금 건져 올릴 수 있다고 말해주는 목소리. 그리하여 스러지는 정오의 빛처럼 아스라이 펼쳐지는 이 목소리는 이상한 안도와 위로를 전해준다. 어떤 웃음들, 어떤 울음들. 사랑했던 이와의 기억이 가득한 정원에서 이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 사랑을 그 사람을 죽음 이후로도 계속해서 되살려내기 위해 그 모든 사소하고도 은밀한 소리 들을 낡은 악보에 기입했던 시미언 피즈 체니처럼. 수상한 커튼은 사물과 세계의 소리 들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지나간 시간을 다시금 이 자리로 불러올 수 있다고 그 자신의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증명해낸다. 그저 순간순간을 살고. 순간순간에 머무르고. 순간순간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듯한 이 숨결과도 같은 목소리. 그러니 순간의 호흡처럼 순간의 걸음처럼 그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숨소리처럼 듣기를 바란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가 아니다. 당신이 당신만의 호흡을 뚜렷이 자각하는 방법을 고안해낼 때. 그렇게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너와 나와 우리의 숨소리를 문득 뚜렷이 인지하게 될 때. 당신은 어느 결에 멀리 멀리로 물러났다고 생각했던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선물처럼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순간의 빛을 조금 더 연장해나가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두고 온 정원에서 당신은 가만가만히 걸어가게 될 것이다. 명상하듯이 느리게. 순간 속에서 순간 속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당신 자신의 내면을 느끼면서. 순간순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면서.
*명상하듯이 느리게: 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p.7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