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카빈의 감정, 복선, 반전이 모두 담긴 한 편의 독립영화
Billy Carvin의 [Independent Film]
창작 세계와 감상의 세계를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모든 예술 작품은 통하는 점이 있다. 문학, 음악, 미술, 영화, 그 형태가 어떻든지 간에 작가는 작품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감상자는 이를 통해 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최근엔 단기간에 빠르게 소비되면서 큰 수익을 얻기 위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면서 그런 감정의 연결고리 기능은 약해졌다. 이런 트렌드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그 트렌드에 뛰어들진 않는다. 누군가는 자금적 서포트가 없는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독립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고, 빌리 카빈(Billy Carvin)의 첫 정규 앨범 [Independent Film]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Independent Film]은 배급사나 후원사 같은 다른 이의 입김이 아닌 빌리 카빈이 감독한 대로 만들어졌다. 시작과 끝 또한 영화처럼 오프닝 씬으로 시작해 엔딩 크레딧으로 끝난다. 감독이자 동시에 주연배우인 빌리 카빈을 제외하고 곡에 참여한 사람들은 Feat.이 아닌 Cast.로 표기됐다. 이들은 감독의 요청에 따라 보컬, 랩, 비트, 그 외에도 각종 소리가 주는 청각적 심상을 활용해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던 다양한 심상을 연출했다.
곡 하나하나는 각본 속 시퀀스(sequence)처럼 독립된 연속성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시퀀스들이 모여 전체적으로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하나의 플롯(plot)이 된다. 오프닝부터 차례대로 감상해보자. 아름다운 오프닝과 함께 “화원”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보통 영화에서 가장 큰 행복은 마지막에 찾아오는 것과 달리 [Independent Film]에서 가장 밝고 긍정적인 정서는 앨범 초반의 이 곡이다.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이 희망과 믿음은 3번째 트랙인 “동경"에서 ‘돌잔치 애기처럼' 모던 라임즈를 집었던 당시로 돌아가면서 구체화한다. 힙합 팬이라면 익숙할 버벌진트(Verbal Jint)의 [Modern Rhymes] 등 그가 직접 따라부르고 즐겨 듣던 노래의 구절들이 아카펠라 스크래치로 표현되어 아티스트의 회상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간은 “미장센"이다. 미장센이라는 단어는 영화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작업을 뜻한다. 영감에 자극 받고, 고뇌가 수반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창작가의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곡은 후반부 아웃트로에서 변조된 목소리를 통해 훈계하며 끝난다. 별다른 설명 없이 끝나는 이 훈계는 ‘돈 안 되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처럼 이어지는 곡 “#famous”에서 소신을, 그러면서도 다음 곡“She Loves Idol”는 아이돌 음악가에 열광하는 팬의 이야기를 하며 상반된 감정을 담는다. “Smile For Me”에서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노래하기도 한다.
앨범의 분위기는 “부재중 전화 (Skit)”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앨범 전반의 분위기가 그래도 ‘빛'에 가까웠다면 이 기점 후반의 음악은 ‘음영'에 가려진 부분이랄까. 현실에 부딪히는 빌리 카빈의 감정은 “우리 모른 척 그냥 웃자”와 “소실”로 갈수록 극대화된다. 이 때의 허망함은 무너져 내리는 “무대륙"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로 이어진다. 제임스 처치 워드(James Churchward)의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을 기반으로 한 이 곡은,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문명을 건설했지만 1만 5천 년 전 대지진 때문에 사라진 전설의 땅 무대륙이 마치 힙합씬에 대한 환상과 로망과 같다고 빗댄다. 섬의 이야기가 섬에 고립된 남자의 이야기 “Castaway”로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섬에서 빌리 카빈은 불안하거나 무서워하기보단 스스로 고독 속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 그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가 바로 “우주 (Universe)”다. 사방이 막힌 섬에 갇힌 “Castaway”와는 공간적으로 완전히 반대지만, 고독이라는 매개로 함께 이어지고 있다.
점점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다가간다. 인간들의 욕심으로 순수한 동물들이 멸종되어가는 현상을 이 시대 예술가들의 모습에 투영한 “멸종"엔 다양한 장치가 사용된다. 뉴스에서 나올 법한 나레이션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김태균의 “암전" 샘플은 죽음을 맞이하는 멸종위기 동물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린다. 여기서 나온 가사가 버벌진트의 “역사의 간지(奸智)”를 레퍼런스 했다는 점에서 초반부 “동경"에서 등장했던 버벌진트의 목소리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멸종은 자연스레 죽음의 강으로 이어진다. “Lethe”는 죽은 사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전에 건너는 망각의 강 레테를 모티브로, 죽기전 생들을 회고한다. 곧 망각의 강을 건넌 후처럼 우울한 분위기의 “귀향"이 나온다. 예술가로서의 생을 마감한 후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버스안 장면이다. 예술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비극적인 엔딩은 해피엔딩에선 느낄 수 없는 각종 감정이 응축되어있다.
순수한 열정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빌리 카빈은 [Independent Film]에서 고뇌하고 변모하는 입체적인 인물로서 그 과정의 기억과 감정을 가사와 시시각각 변하는 랩 스타일, 그리고 각종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한편으론 그저 아티스트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현실과 꿈 사이에 갈등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빠르게 트렌드가 변하고 모든 것이 소비되는 각박한 시대, 자신의 의도를 확고히 하며 가사에 자신의 감정과 철학, 스토리를 의도적으로 담은 말 그대로 독립영화같은 음악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2019년에 나온 빌리카빈의 [Independent Film]은 그런 차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고, 흥미롭게 들을 부분이 많은 앨범이다. 그가 의도한 장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반전은 무엇인지 점점 흥미로워지는 이야기에 주목하며 영화를 보듯 [Independent Film]을 감상해보길 바란다.
림스타그램 (힙합엘이 에디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