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랩과는 다른 길
거친 긍정의 파동 ‘BLUE WAVE’
랩은 전 세계 음악의 대세다. 부정의 여지가 없이 미국, 영국, 한국의 차트를 주도한다. 고교생의 넋두리가 광고 시장에 영향을 줄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한 랩씬. 하지만, 랩의 주류인 미국의 랩씬은 이른바 트랩(trap)이라는 힙합 하위장르의 아래에서 굴종한다. 마이애미, 애틀란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서던 래퍼들의 트랩 비트가 차트를 지배하고, 국내에서도 이들의 스타일을 소화하는 능력이 마치 래퍼의 퀄리티 차이인 양 다뤄진다. 트렌드에의 굴종을 강요하며 트렌드를 좇고 있는 대중의 조급함이 역으로 씬을 견인하는 아이러니다.
R&B 신동들의 연이은 데뷔로 음악씬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플라네타리움 레코드에서 마지막으로 솔로 데뷔를 신고한 모티(Moti). 모티는 레이블 안에서 유일한 정통 래퍼이기에 이전 동료들의 데뷔와 궤(軌)를 달리한다. 앞서 선보인 동료들의 멋진 데뷔에 어떤 차별화된 음악으로 부응할 것인지 기대가 모아졌다.
씬을 주도하는 수많은 랩 크루의 도움 없이 홀로 등장한 그가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
그의 곡 안의 가사에 답이 있었다. ‘트랩과는 다른 길을 걸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에서는 트렌디한 트랩 스타일이 묻어난다. 이제 스물 둘의 나이, 트렌드를 관통해야 할 젊은 래퍼에게서 맛볼 수 있는 당연한 멋이다. 그럼에도 그가 트랩과 다른 길을 걷겠다는 짧은 메시지를 던진 이유는 무얼까?
그가 음악에 담아내는 메시지와 스토리다. 힙합은 비트로 평가되어지는 음악이 아니었으며, 랩의 속도로 평가되어지는 음악도 아니었다. 뮤지션이 빠른 속도의 래핑을 통해 짧은 곡 안에 가득 담아내고자 했던 메시지, 그 근원적 가치는 이른바 ‘Dirty South’의 득세 속에서 가치를 잃었다. 모티는 메시지를 잃은 트랩의 현재를 부정하면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트랩의 음악적 가치를 수용하며 자신의 행보에 첫 이정표를 심었다. 긍정에 대한 메시지가 그의 음악을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싱글에는 두 곡이 담겼다. ‘BLUE’와 ‘WAVE’. 합치면 ‘BLUE WAVE’, 푸르고 역동적인 파도가 밀려온다.
모티는 이번 싱글을 만들며 스스로의 현재 감정 상태와 음악적 색을 제목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두 곡의 제목이 ‘BLUE’와 ‘WAVE’.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을까?
모티는 “두 곡은 다른 느낌이지만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BLUE’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WAVE’는 인간관계의 힘든 점도 이겨낼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밝은 모습만 있는 게 아닌 어두운 면도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이번 싱글에 담긴 메시지를 설명했다.
‘BLUE’라는 단어는 우울함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음악에서는 특히 그렇다. 노동에 푸르게 그을린 흑인들의 피부는 대중음악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우울함을 표현하는 색이 되었다. 하지만 모티가 생각했던 파랑색은 우울한 느낌이 아닌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이었다. 밀려오는 파도에도, 잔잔한 물결에도 ‘BLUE’가 얹히면 진취적 희망을, 또는 평온한 위로를 전한다. 타이틀곡인 ‘BLUE’는 이런 파란 색감의 긍정적 뉘앙스가 담겼다. 밝은 느낌의 비트에 여름 색을 담았으며, 데뷔곡에서부터 대중과 호흡하고자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Verse 파트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펀치라인을 집중해서 들으면 곡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다.
더블 싱글로 수록된 ‘WAVE’의 톤은 ‘BLUE’와는 다르다. 어두운 느낌의 사운드와 래핑으로 곡을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BLUE’의 감정과는 상반되는 곡으로 모티 스스로가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인간관계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곡 안에서 뒤섞였다. 하지만 중반부부터는 곡의 비트가 바뀌며 지루함을 제거한다. 물론, 가사 역시 복잡한 감정을 긍정의 골로 유도하며 출구를 마련한다.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자극에 무뎌진 힙합. 그 무뎌진 틈사이로 모티 본인만의 스토리를 계속해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모티의 음악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유다. (글/대중음악 평론가 이용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