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정키', '시스코' & '거미'와 알앤비 싱글 "Value" 발표
흑인음악을 즐겨들어온 사람으로서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다. 대체 그 많던 '남성 알앤비 그룹'은 어디로 간 걸까. 미국 알앤비 시장에서 언젠가부터 남성 그룹이 보이지 않는다. 명실상부한 '솔로의 시대'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에게는 '그룹의 시대'도 있었다. 112가 있었고, 블랙스트리트가 있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드루힐이라는 4인조 그룹이 존재했다. 90년대 중반에 등장해 남성 알앤비 그룹의 역사를 새로 쓴 드루힐. 프로듀서 '정키'의 새 싱글 "Without You"에 이름을 올린 '시스코'는 바로 이 그룹의 리드싱어였다. 혹시 몰랐다면 "In My Bed" 뮤직비디오를 한번쯤 보고 오자.
하지만 한국사람이라면(?) '시스코' 이야기를 하면서 휘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모르긴몰라도 휘성을 통해 '시스코'를 알게 된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니. 휘성이 2002년에 발표한 데뷔앨범에는 "Incomplete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누군가는 휘성의 노래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노래는 원곡이 있다. '시스코'의 솔로 앨범에 수록되었던 "Incomplete"가 그것이다. 휘성은 이 노래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대로 다시 불러서 자신의 데뷔앨범에 실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PC통신 시절에 휘성과 같은 흑인음악 창작 동호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아직 데뷔 전이었던 휘성의 당시 아이디를 나는 기억한다. 그의 아이디는 '휘스코'였다.
'시스코'와 그의 노래 "Incomplete"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두 가지가 "Without You"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Without You"는 알앤비 카테고리에 담을 수 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피비알앤비나 주류 알앤비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이다. 듣기에 따라 팝발라드 성향도 느껴지는 "Without You"는 오히려 고전적인 알앤비와 맞닿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노래 중후반부에 삽입된 '자동 응답기 메시지' 부분은 이런 느낌을 더욱 배가시킨다. '시스코'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실 이 노래는 "Incomplete 2"라고 해도 무방하다.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실제로 "Incomplete" 가사와의 '연결고리'를 콘셉트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정키'가 '시스코'에게 이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했고, '시스코'가 흔쾌히 단번에 수락했다고 한다. "Incomplete"을 즐겨들었던 이라면 익숙한 가사가 "Without You"를 통해 새롭게 들리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알앤비 특유의 '구체적이고도 진솔한' 서사는 그대로겠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이 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바로 '거미'라는 마지막 퍼즐에 주목해야 한다. '거미'의 참여 역시 프로듀서 '정키'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미는 한국 알앤비의 여제 답게 시스코의 상대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실제로 이 노래의 후반부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가수와 호흡을 맞춘 '거미'의 기분이 궁금해진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재즈피아노를 전공한 프로듀서 '정키'는 최근 몇 년 간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도우즈레코즈와 계약한 후 1년 6개월이라는 공백기를 가졌다. "Without You"를 탄생시키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을까. 그 기다림의 결과 우리는 '정키', '시스코', '거미'라는 뜻밖의 조합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선물받게 되었다. 이 겨울에 참 따뜻한 노래를 얻었다.
김봉현 (음악비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