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FRIEND 3rd EP [WITCH]
어린 소녀 빨간 두건은 할머니 집을 찾아 숲 속을 지나간다. 사나운 늑대는 빨간 두건 소녀를 잡아 먹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꾀를 내어 빨간 두건에게 다가간다.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는 결국 소녀를 잡아먹는다. 온전히 동화의 틀을 하고 있지만 아름답기보단 잔인한 결말을 맞는 고전 잔혹동화 ‘빨간 두건’의 이야기다.
잔혹동화의 재해석. 뒤틀린 순애보적 사랑!
보이프렌드의 3번째 미니앨범 [WITCH]는 동화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을 띄운 할머니가 뭔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알면서도 당하는 소녀. 보이프렌드는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뒤틀린 순애보적 사랑을 노래했다. 마녀를 테마로 음악, 퍼포먼스, 뮤직비디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텔링 전개. 잔혹동화를 재해석해 키워드로 연결한 프로덕션이 인상적이다. 타이틀 곡 "WITCH"는 이 앨범에서 보여주고자 한 멤버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그려낸다. 고전동화의 형식을 파괴한 곡이 인상적인 만큼 다이나믹 한 음악, 과거와 현재가 믹스된 스타일링, 단단한 합을 그려낸 퍼포먼스까지 온전한 보이프렌드의 2차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초창기 단정하게 꾸며진 캐릭터가 이들의 매력이었다면, "WITCH"는 무대뿐 아니라 노래 안에서도 길게 시선을 끌고 갈만한 무게감을 준다. 독자적인 영역의 발판을 마련해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프로듀싱팀 스윗튠의 전매특허인 곱게 제련된 음악이라 하기엔 날이 바짝 서 있다.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웅장함에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3분50초의 시간을 전달한다. 덕분에 팀 전체의 존재감도 더욱 뚜렷해졌다. 기존 스타일의 장점은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성장곡선을 그려낸 결과다.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의 뮤직비디오 역시 몽환적이면서도 키치한 감성을 압축한다. '레드'가 갖는 유혹이란 상징적인 이미지로 포인트를 살리면서, 고전미에 현대미를 더한 '스팀펑크' 패션을 통해 세련미와 더불어 안정감 있는 스타일링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결과, 곳곳에 세밀하게 다듬어진 키워드가 거친 남성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잘 표현해냈다. 장막을 활용한 퍼포먼스 역시 멤버들의 동선을 분명히 각인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웰메이드 틴팝의 재해석. 은밀하게 차분하게!
앨범 전체적으로 고유의 팀 컬러는 유지하면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앨범을 이끄는 두 중심축은 그리움과 설렘이다. "White Out"과 "친구라도 돼줘"에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안타까운 이별과 그리움을 전해준다. 특유의 애잔한 감성이 돋보이는 서브타이틀 곡 "White Out"는 차분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멜로디가 빛을 발한다.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해 점차 고조되는 곡들의 감정은 극에 달함과 동시에 애잔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매끈한 사운드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춰 듣기 편한 감상을 전달한다. 거칠게 달리는 댄스곡이 높이 솟구치다가도 차분하게 숨을 고르게 하고, 때론 아련하게 감정을 조련하는 식. 적당한 긴장감과 편안한 감상이 결국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감성의 결을 쌓은 결과, 끊김 없는 편안함은 이 앨범의 강점이다. 각 멤버들의 성숙해진 역량도 눈에 띈다. 민우와 광민 그리고 옐라다이아몬드가 참여한 "Bewitch"는 성장한 보이프렌드의 포부를 명확하게 드러냈고, 동현과 정민 그리고 를 (lel)이 공동프로듀싱 한 자작곡 "잘 지내더라"는 미니멀한 깔끔한 송라이팅을 통해 감성적인 어쿠스틱 넘버를 완성했다.
보이 그룹 이미지의 재해석. 선명해진 성장곡선
아이돌에게 이미지는 중요하다. 소년의 앳된 모습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줄 땐 더욱 조심스럽다. 혼란스런 과도기에만 보여줄 수 있는 매력도 분명 존재하지만,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프렌드는 근육을 키우거나 과도한 노출 없이도, 억지로 자극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장의 적정선을 유지했다. 일본에서 쌓은 성공적인 커리어 덕분에 이제 여유와 자신감 마저 엿보인다. 보통 아이돌이 흔하게들 꺼내 드는 ‘성숙함’에 대한 설정이 단순히 홍보에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이미지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예쁘장한 외모에 큰 눈동자를 깜빡이며 하트를 보내던 데뷔 때 모습이 핑크 빛의 파스텔 톤이었다면, 지금은 점점 채도를 높여 결국 붉은 빛을 내뿜는다. 약간의 일탈은 덤이다. 보이그룹의 확실한 기조를 따르면서도 다양한 감성의 폭을 넓힌 결과, 보이프렌드란 이미지 그래프는 점점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제 다양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적응력도 생겼다. 성숙해진 이미지에 내러티브까지 더해지니 이제 남자의 향기가 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