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온'의 15주년 기념 음반 2013년 11월 29일 (금) 공개
가리온 다시 힙합을 말하다!
이번 신보는 지난 4일 공개된 "거짓 2013"과 함께 타이틀 곡인 "그래서 함께 하는 이유" 등의 오리지널 트랙들을 재구성한 총 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은 요즘처럼 90년대의 향수가 각종 매체를 통하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대에 사라져가는 90년대 힙합과 함께 했던 문화들에 대한 진한 향수를 힙합 마니아들에게 전하기에 충분하다.
이번 앨범에서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다시 힙합'이다. 힙합이 대중화 되면서 과장되고 좀 더 중독적인 '패턴'식의 음악들, 그리고 자극적인 퍼포먼스 위주의 무대, 이런 과도한 양념이 더해진 음악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요즘, 이 앨범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가리온은 이 앨범에서, 자신들이 15년 동안 힙합의 '선두'가 아닌 '중심'에서 달려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가리온은 이번 앨범에서 한국 힙합 속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그 본질을 지켜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리온은 앨범이 발표된 후 다가오는 12월 14일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15주년 기념 콘서트 '뿌리 깊은 나무'를 준비 중이며 이 무대에선 한상원 밴드와 Show me the money 2에서 두각을 나타낸 매드클라운이 무대에 함께 올라 이들의 15주년 축하하며 무대를 빛내줄 예정이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한 가리온의 15주년 기념 음반 `너희 모두 진짜 가짜!! 우린 여전히 건재` - 김봉현 (대중음악비평가)
(…) 서태지나 듀스를 보면서 ‘나도 랩 음악 좋아하는데,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비록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 모임이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랩 같은 거 직접 써보면 좋지 않겠나 농담처럼 서로 주고받았다. 물론 속으로는 '놀고 있네, 뭔 랩을 해' 그랬지만. (…) 그러다 1997년에 블렉스 1집을 mp3로 발표했다. 온라인이지만 커버도 만들고 땡스 투도 쓰고 할 건 다했다. 그 때 사람들이 우리말로도 랩을 할 수가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구리기는 해도 그 때는 구리다는 생각을 안 했다. 당시에는 '텔레비전과 달라. 우린 엠씨야. 알아? 이게 랩이야' 이랬으니까. (…)
몇 년 전, 단행본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에 실린 나와의 인터뷰에서 엠씨메타는 데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 역시 그 시절에 한 명의 어린 리스너로서 그들의 음악을 PC통신을 통해 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들이 1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앨범을 들어본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변한 건, 없다.
앨범의 문을 여는 "그래서 함께하는 이유"와 "거짓"은 가리온이 1998년에 발표한 노래들이다. 이 시작의 노래들이 15년이 흘러 '2013'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시 태어났다. 어찌 보면 완전히 다른 노래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곡의 익숙한 레퍼런스가 군데군데 들리기는 해도 엄연히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완전히 같은 노래들이기도 하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지켜내야 할 태도'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꼭 같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만 가사를 쓴다는 신념도 여전하다.
힙합이 유행만이 아닌 문화라는걸. 가늠할 수 없는 가치가 넘친다는걸. 그걸 증명하는 걸, 업으로 삼은걸. 그 땐 다들 알거야, 내 말이 맞은걸!
새삼 '자리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그냥 우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가리온은 지난 세월 동안 분명한 이유와 태도로 많은 기회와 유혹을 뒤로 한 채 자기 자리를 치열하게 지켜냈다. 많은 이들이 아쉽고 안타까운 이유로 떠나간 바로 그 자리 말이다. 이번 앨범을 통해 가리온은 15년 전의 초심을 다시 꺼내 외쳐도 어색하지 않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실제로 이 앨범에는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으로 가득하다. 15년 전 엠씨메타와 나찰을 매료시켰던 ‘힙합’은 온전히 보존되어 15년 후 이렇게 세상으로 나왔다. 때로는 브레이크비트까지도 연상시키며 리듬 자체로 승부를 보는 듯한 로-파이 드럼 비트, 시종일관 둥둥거리며 낮은 곳에서 부유하는 베이스, 흔한 여성보컬 후렴 하나 없이 랩으로 꽉 찬 트랙 구성은 마치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이 다른 음악이 아닌, '힙합'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음악만이 힙합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리온의 15주년 기념 앨범이 ‘비트와 랩’이라는 힙합의 가장 순수한 원형질을 가져다 현재의 수준으로 재창조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DJ Son의 몇몇 드럼 프로그래밍은 가리온의 이 같은 의도에 충실히 화답했고, Optical Eyez XL이 프로듀싱한 ‘락샤사’는 만듦새와 질감, 그루브 등 모든 면에서 올해의 한국힙합 비트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여담이지만 "거짓 2013"의 프로덕션은 마치 Gangstarr의 "Code of the Streets"의 거센 일렉트로닉 버전 같기도 하다).
랩 자체의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앨범은 랩이 중심이 되어, 랩이 주는 쾌감과 재미를 안긴다. 나찰이 '락샤사'를 통해 솔로로서의 묵직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면 엠씨메타는 늘 그렇듯 다채로운 플로우와 접근법을 드러낸다. 직설과 은유를 적절히 넘나드는 표현, 강약조절과 기승전결을 염두에 둔 랩 디자인, 얼터-에고의 활용(‘독백’), 언어유희적인 구절에 담긴 곡의 주제를 플로우를 통해 형상화하려는 시도(거짓 2013) 등은 한국힙합 씬에서 가장 연륜 있는 엠씨가 역설적으로 가장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내 팬이 많지 않아도 돼, 랩을 들어봐. 이제 의미 없는 SWAG 따위 안 뱉으니까. 내 음악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단 말. 난 듣고 싶어, 진짜 필요해 누군가
이 앨범을 통해 문득 2013년의 한국힙합을 돌아본다. 역사상 가장 종잡을 수 없는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이제 힙합이야말로 대세'라고 떠들어대고, 다른 한쪽에서는 '힙합의 대중화'나 '발라드 랩'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누군가는 힙합이 이제 한국에 정착했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착시라고 비판한다. 음원차트 순위에 오르내리는 래퍼들의 음악이 힙합인지 가요인지에 대한 찬반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리온의 15주년 기념 앨범이 나왔다. 5곡의 주제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것은 (힙합에 대한) 초심이고, 변하지 않는 마음이고, 순수함이다. 우리는 이미 힙합이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오랜 전통을 음악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이어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힙합이 진짜와 가짜, 순수와 변질에 관한 가장 격렬한 논란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이 앨범의 사운드와 메시지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가리온의 음악에, 모두 응답하라.
힙합이 힙합이 아니면 힙합이 아니지. 근데, 힙합이 아닌데 힙합이란 건 말이지. 바로, 사기, 구라, 미친 거짓. 너희 모두 진짜 가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