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자장가
강백수 [3집 Track.05 ‘아가야’]
세상이 공평하다는 말을 믿을 만큼의 순진함은 이제 내게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은 동일하지 않으며 그 간격을 다 따라잡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고 말았습니다. 사자의 새끼는 사자로 태어나 빼앗으려 애쓰고. 얼룩말의 새끼는 얼룩말로 태어나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사바나 초원 위의 삶들과 이 도시의 삶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바나 초원 위의 얼룩말과 많이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 나의 삶에는 그래도 작은 차이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바나의 얼룩말은 사자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하지만, 우리는 사자에게 아첨하고 복종한다면 운 좋게도 살아남아 사자 보다야 하찮지만 그나마 힘있는 얼룩말이라도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기적을 보곤 합니다. 사바나의 얼룩말은 절대로 사자가 될 수 없지만 우리는 가뭄에 콩 나듯 얼룩말이 사자가 되는 것과 같은 신분상승의 순간을 목격하곤 합니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희망 삼아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합니다.
얼룩말 같은 내 친구가 얼룩말 같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둘을 닮은 예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친구는 아기가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요. 자신의 아이가 경험할 세상이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길 바랄 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아기들은 세상의 불공평함을 경험할 겁니다. 불공평함은 아름답지도, 따뜻하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아기들은 도망치는 법이나 아첨과 복종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어쩌다 한 번 어른이 되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아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세상은 점점 더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가야’는 희망이 사라진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고 만든 노래입니다. 희망이 없는 부모는 아가에게 감히 꿈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단지 불공평함을 견뎌내는 방법만을 이야기할 수 있겠죠. 디스토피아라고 했지만 사실 꿈을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라고 말하는 부모는 현실사회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잔혹한 자장가를 아기에게 불러주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할까요. 이건 다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2020년 가정의 달 5월, 강백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