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동부5고개에 갔어요. 5개의 고개마다 다른 성격의 고난. 초행자에게는 쉽지 않은 코스에요. 다섯 개 중 제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벗고개. 시작부터 하늘로 높게 치솟은 길이에요. 상당히 가파른 경사라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겁을 집어먹게 되더라고요. '지금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다.' 고개 앞에서 저절로 겸손해지는 자세.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호기심 하나 믿고 가죠. 죽을 만큼 힘든 경사를 한 페달 한 페달 묵묵히 밟아 갑니다. 비 오는 듯 흐르는 땀이나 움푹 팬 노면, 가냘픈 자전거를 위협하는 야속한 자동차도 모두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단순해지는 감각. '더는 무리야~'라고 소리 지르는 근육들과 터질 것 같은 숨소리만이 오직 세상의 전부.
얼떨결에 첫 번째 고개의 정상에 도착해서'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었습니다. 하늘을 날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 기분을 타고 이제 내려가야죠. 내리막은 시원하고 기분 좋고 아주 무섭습니다. 하늘을 날아버릴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합니다.
서후고개(두 번째 고개), 명달리(세 번째 고개) 정상에서 휴식하며 위댄스의'그저 하고 싶다는', Ride의'Vapour Trail'을 들었습니다. 네 번째 고개 중미산은 달리는 길 내내Pavement의'Terror Twilight 앨범'을 들었어요. 환상적인 나뭇잎 그늘을 우리 몸에 얹어 주었어요. 감동하면서 달리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어요. 중미산을 넘어와서 얼음이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몸을 풀며My Bloody Valentaine의'Only Shallow'를 들었습니다. 핏속으로 아메리카노와 노이즈가 빠르게 흡수됩니다. 대망의 마지막 고개인 유명산 정상. 차 소리와 바람 소리 속에서 우리는 포옹과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이렇게 동부5고개를 넘은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날 하루 동안5개의 고개를 넘은 경험은 마치 응축해 놓은 삶의 단편처럼 느껴집니다.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으로 쏟아지고를 반복하며 나뭇잎의 그림자 속을 천천히 달리는 시간 속에 음악은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기분을 좋게 하고 다시 투지를 다지게 하고'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복잡한 심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면 저항 없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앨범 소개를 한답시고 어째서 자전거 잡지에나 보내야 할 것 같은 글을 쓰고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제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DANCE POP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가능하겠죠. 어떤 한 가지 면을 쓰게 되면 어쩐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 글로 적는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우리가 만드는 노래는 어떠한 뚜렷한 목적이나 기준을 가지고 시작되는 것이 아닐 때가 많아요. 상품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영역인 게 분명하죠. 아니면 그냥 너무 잘하려고 해서 일까요.
11곡의 노래가 한 장의 앨범에 소중하게 담겨서 세상에 나왔어요. 휴식을 취할 때나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걸으면서 지하철 안에서 당신의 시간과 이 노래들이 정답게 깍지 끼고 함께 흐르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음악은 어떤 상황 속에서든 우리의 기분을 바꿔버리는 마법을 부립니다.
- 위보 Wevo
위댄스의 새 음반 [Dance Pop]을 듣는다. 안도감을 느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예의 그 모습대로, 멋대로 춤추고 있다. 거칠고 울림이 많은 기타도, 뭔가에 취한 듯 읊조렸다 불렀다 하는 보컬도, 다소 조악하고 반복적인 드럼 비트도 그대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멋대로라는 것이다.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City Punk]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서울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지하철역, 횡단보도, 주택가, 청계천변 등은 그들의 존재만으로 괴상한 댄스플로어가 된다. 나는 지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설거지를 하며 음반을 듣고 있다. 그릇과 접시와 잔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괴생명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 이게 위댄스지! 위댄스의 음악은 이상하다. 그리고 불친절하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당혹감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수년을 하루같이 그 불친절함을 끈덕지게 밀어붙이는 그들의 일관성이 내게는 오히려 친절하게 느껴진다.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한결같이 제멋대로인 그들의 음악은 오히려 휴식을 선물한다. "이 아이러니는 나를 가만두지 않([아이러니즘] 중에서)"는다. 다시 한번 다 내려놓고 춤을 추게 만든다.
- 장기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