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 [안으로, 밖으로 나의 날개를 찾아서]
한 사람이 있다. ‘여자’로도, ‘수진’으로도 지칭되는 그 사람은 앨범을 내내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안개가 자욱한 언덕길을 걷고 걸어 저기에서 여기로, 안으로 밖으로. 그가 존재하는, 대체로 추상적으로 소환되는 공간들은 종종 09번 버스나 구석진 골목 같은 구체적인 이름이 되어 듣는 이에게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지금 발 딛고 있는 어디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듯 시간과 장소를 유영하던 여자는 내면에서도 끊임없이 시선을 바꾸며 모습을 달리한다. 그는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 되었다가 죽이는 얼굴이 되기도 하고, 덧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백수 같은 여자가 되었다가는 노래하는 수진이 되기도 한다.
수진의 미니 앨범 [안으로 밖으로 나의 날개를 찾아서]는 그렇게 한 음악가가 자신의 내면과 외면, 피아를 느릿하고 신중하게 풀어 본 작업 모음집이다. 2018년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싱글 [봄]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첫 EP [내 마음은](2018)을 비롯한 다수의 싱글을 꾸준히 발표하며 자신만의 걸음을 차분히 옮겨왔다. 활동 초기 어쿠스틱 연주를 기반으로 팝과 현대음악의 경계에 놓인 음악을 들려주던 그는 지난 2월 이번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밤,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점차 앰비언트나 드림팝에 가까운 터치를 선보이며 음악적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익숙한 드럼과 베이스 연주에 심연 어딘가에서 길어 올린 듯한 소리가 담긴 다섯 곡의 노래를 결코 쉽거나 가볍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어둡고 낯선 음악의 주파수와 일치하는 순간을 찾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지금껏 만난 적 없는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안과 밖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만의 날개를 찾아 헤매는 음악가의 여정을 지켜보는 건 늘 새롭고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