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재미가 가득한 7곡의 매력적인 일렉트로-팝
그녀의 재밌는 놀이, 프로듀서 아슬(Aseul)의 새 EP [ASOBI]
모든 놀이에는 고유한 규칙이 존재한다. 정해진 규칙을 이해하고 잘 따르는 것이 놀이에 있어서 무척 중요하다. 규칙이 없는 놀이는 그저 임의적인 몸짓이나 중얼거림일 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규칙 안에서만큼은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다. 어떤 결과가 뒤따르건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놀이이기에 우리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놀이는 양가적이다. 정해진 규칙이 있다는 점에서 놀이는 무척 엄격하고 질서정연하지만, 선제된 규칙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질서함과 혼란함 속에 남겨져 있다는 점에서 놀이는 자유롭다.
아슬(Aseul)이 2년 만에 들려주는 [ASOBI](アソビ, 놀이)도 고유한 (음악적) 규칙을 가진다. 유카리(YUKARI)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던 [Echo]와 전작 [New Pop]에서 모두 일관되게 유지되었던 음악적 요소들이 규칙의 기저에 자리한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중심이 되는 구성은, 드림 팝이나 슈게이징 같은 장르의 문법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아슬(Aseul)에게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또한, 로-파이(Lo-fi)한 사운드도 여전히 앨범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는데, 다만 그 결이 전작들로부터 달라졌다고 느낀다. 노이즈와 잔향을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공격적으로 사용하던 [New Pop]과는 달리, “Summer Love”나 “구멍(Fill Me Up)”처럼 멜로우한 분위기를 내세우는 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관성과 변화가 공존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슬(Aseul)은 자신만의 음악적 틀을 그려내려는 [Echo]에서의 첫 시도로부터, [New Pop]을 통한 자신의 음악적 문법에 관한 심화된 탐구를 거쳐, 정초된 (음악적) 규칙 위에서 언어적이고 서사적으로 세계를 구축하려는 모험을 [ASOBI]에서 이어나간다.
다시 말해, 잘 정립된 규칙과 공명하면서도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은 아슬(Aseul)이 노래하는 가사들이다. [ASOBI]에 담긴 7곡의 가사들은 선제된 (음악적) 규칙 위에서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을 언어적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마치 별개의 규칙을 가진 7개의 놀이 같다. 표면적으로는 각각의 곡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도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ASOBI]를 관통하는 궁극적 목표는 단 하나이다. 신경 쓰이는 구멍을 막으며 떠나간 첫사랑과 사라진 사람들을 상상하고(“구멍(Fill Me Up)”), 방 안에 앉아서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보며(“Room”),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기꺼이 바라거나(“모래성(Sandcastles)”), 그럴듯한 모습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Always With You”), ‘내’가 끝내 바라는 것은 ‘너’의 마음을 얻는 것이자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인 목표로 작동할법한 이 규칙을 통해, 아슬(Aseul)은 자신이 창조한 7개의 놀이를 하나로 엮어낸다.
“모든 놀이함은 놀이됨이다.”는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문장을 떠올린다. 놀이에 참여하는 우리가 놀이를 행하고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주어진 규칙과 그 속에서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놀이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슬(Aseul)이 구사하는 사운드와 그것에 힘입어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가사들이 만들어낸, 이 매력적인 놀이도 어쩌면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너무 겁내지 않기를. 모든 놀이가 그러하듯, 아슬(Aseul)이 들려주는 [ASOBI]의 종착역은 결국 즐거움일 테니까.
전대한 | 대중음악비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