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경' [깨진 빛]
1. 서울 -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면서 이따금 사람은 적고 자연은 많은 곳으로 여행을 갑니다. 이를테면 제주도의 인적이 드문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다거나, 강원도 산속에서 별을 보며 정취를 즐기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공기를 평화롭게 들이마시고 있을 때면 문득 ‘나는 왜 이런 곳에 살지 않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도시에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합니다. 물론 생각만 그렇게 하지 금세 서울로 올라와 버리고 말지만요.
밴드 쾅프로그램의 노래 <서울>을 들어보면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라는 한 문장이 주문 외듯 반복됩니다. 거기에 직선적인 드럼 연주와 몰아치는 기타 연주가 더해지면서 서울이라는 정신없고 거대한 도시의 복잡한 다면을 콜라주 기법으로 엮어낸 듯 그려냅니다.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복잡하고 요란한 이 대도시에 왜 나는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을까요.어떻게든 정붙이고 살고 있는 편인지, 아니면 사실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2. 하드보일드한 도시의 밤
낮에 내렸던 싸락눈이 더러운 진창이 되어 신발 밑창을 더럽힙니다. 야간 영업을 하는 상점의 불빛이 하얗게 입김에 비추는 도시의 밤을 발 닿는 대로 걸어봅니다. 걷다 보면 여기저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지만, 어느 하나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든, 실연의 아픔에 비틀거리든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골목을 휘청휘청 걸어 본 경험은 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겁니다. 누군가 깨뜨려 놓은 유리병이나 깨진 형광등 파편이라도 보게 되면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한 기분이 되지요.
때때로 그 유리 조각에는 상점의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릴 때도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와는 꽤 다른 기분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반짝거림에도 나름의 예쁨이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내가 겪었던 수많은 순간이 동시에 떠오르는 그런 시간입니다.
3 . 깨진 빛
이번에 발표하는 노래 ‘깨진 빛’은 경멸하고 사랑하는 이 도시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각자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동시에 살아간다는 사실은 현기증 나는 일이지만 그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예쁜 기억들이 이따금 빛난다는 게 다행입니다.
글_황인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