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의 보컬 황인경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 ‘12 stories, 12 concerts’
#9 바람길
바람 + 길
‘바람길’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 조금은 낯선 말입니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바람이, 길이라는 말과 만난다는 게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바람길’이라는 이 곡의 제목을 처음 떠올렸을 때 저는 바람과 길이라는 두 단어가 만나면서 생기는 은근한 긴장감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이 달리는 길이라니, 머릿속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로 발표하는 노래 ‘바람길’은 본래 ‘장항선’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제목을 가지고 있었을 때 이 노래는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는데 가령,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어느 지방 소도시의 기차역 플랫폼에서 귓가에 맴도는 떠나간 열차의 잔향을 느끼며 춤추듯 떠다니는 노란빛의 먼지를 눈으로 좇는 누군가가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방금까지 여기에 열차가 있었는데.’라고 되뇌고 있다… -
같은 식이었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곡의 제목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제가 이 곡을 부르는 이유도 달라졌습니다.
무수히 많은 새로운 길
지방 소도시의 어떤 기차역을 떠올려봅니다. 열차의 방향은 오직 앞과 뒤뿐입니다. 나아갈 길과 지나온 길, 다가오는 시간과 지나간 시간- 이 사이에 있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우리는 쉽게 길을 잃어버립니다. 더 나아가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번민의 시간. 떠나기엔 두렵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으며, 기다리기엔 지쳤습니다.
갈림길 위에 서 있었던 긴 시간 동안 저는 길은 그 둘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늘 위 바람길을 생각하면서부터 제 마음에는 조그만 변화가 생겼습니다. 간간이 고개를 들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을 가늠해보았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조금 우울하지만, 이제는 그 많던 망설임을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에서 주인공 남궁민수가 열차의 앞칸이 아닌 열차 밖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겠지만, 저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길이 있다는 건 조금은 기운 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자주 길을 잃는 사람들에게 작은 이정표 같은 노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노래에 담습니다.
글_황인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