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의 보컬 황인경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 [12 stories, 12 concerts]
우주를 담은 서정 #6 빅뱅이론
- 우리가 속한 세계의 가장 오래된 서사
BB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한창 즐겨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칼 세이건의 동명의 저서 <코스모스>의 내용을 13부작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은하의 형성, 태양과 지구, 빛과 생명, 소립자의 세계까지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리 세계의 거의 모든 단면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흥미로웠지만, 가장 제 마음을 끈 건 빅뱅이론에 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빅뱅이론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모형입니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되돌리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시작되는 한 점이 있다는 이론이지요. 엄청나게 높은 밀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그 점 안에 지금의 모든 행성과 은하가 담겨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빅뱅이론에 따르자면, 인간의 지각으로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오래 전보다 더 오래된 그때 우리는 모두 하나였던 셈이죠. 빅뱅이론은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생명이 없는 모든 것이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 슬픔은 필연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본래 하나였던 세상의 모든 게 서로 멀어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은하와 은하 사이, 행성과 행성 사이의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결코 역행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좀 서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움켜쥐고 있는 무언가 모래알처럼 새어나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노력 따위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지요.
우리의 우주에서 슬픔은 필연입니다. 우리 모두는 멀어지고, 흩어지고, 결국은 소멸하고 말 테니까요.
- Origin of Love
"It was the sad story
How we became
Lonely two-legged creatures,
It's the story
The origin of love.
That's the origin of love"
- 'Origin of Love', Hedwig and the Angry Inch
영화 <헤드윅>의 삽입곡 'Origin of Love'에는 사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빅뱅이론을 생각하다 보니 어쩐지 이 노래가 함께 떠오르더군요.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 이야기에는 아득한 옛날, 인간은 본래 두 사람이 붙어있는 모양이었고 신들의 분노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묘사됩니다. 여자와 여자로, 남자와 남자로, 여자와 남자로 각각 나눠진 인간은 처음처럼 한 몸으로 돌아가려고 사랑을 한다는 내용이지요.
빅뱅이론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기원은 <헤드윅>에서 묘사하는 사랑의 기원과 닮았습니다. 빅뱅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제가 느꼈던 서운함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나였다는 사실에 기초한 그리움과 비슷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넓은 우주에 덩그러니 떠 있는 외로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함께일 때가 있었던 거니까요.
가끔은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의 빛깔을 하나씩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글_황인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