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전기뱀장어의 보컬 '황인경'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
세 번째 싱글 [까만 그림]
안녕하세요. 황인경입니다. 매달 새로운 곡을 들려드리고 그 곡을 주제로 공연을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12 stories, 12 concerts]의 세 번째 순서입니다. 이번에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까만 그림'입니다. 제가 어떤 단계를 거쳐 이 노래를 완성했는지 알려드리는 게 이 노래를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종의 작업 노트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까만 그림' 드로잉
처음 이 노래는 막연한 이미지로만 존재했습니다. 검은 우주를 떠도는 누구도 살지 않는 별, 칠흑 같은 바다 밑을 천천히 헤엄치는 심해어, 어두운 하늘에 보이지 않는 곡선을 그리는 검은 새.... 그 상상의 공간 안에서 저는 우울과 안락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 니가 그려논 그림은 온통 까만 색이 많네요
| 검게 칠한 끝없는 배경엔 까만 그림만 있네요
| 나는 알아볼 수 있었어요
| 나는 알아챌 수 있었어요
| 검게 그린 끝없는 하늘엔 까만 새들이 나네요
| 나는 알아볼 수 있었어요
| 나는 알아챌 수 있었어요
세상 모두가 잠들어 있는 가장 깊은 밤 저는 이 노래를 처음 불러 보았습니다. 어쿠스틱 기타에 노래만 있는 아주 단순한 곡이었지요. 가사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같거나 비슷한 문장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어떤 종류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 '까만 그림' 스케치
누군가 앞에서 처음 이 노래를 불렀던 건 제주 모슬포항 부근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을 때입니다. '별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린다'는 진부한 표현이 사실에 기반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한 마을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모든 불이 꺼지고, 기타와 목소리만이 정직하게 울렸습니다. 여기서 '까만 그림'의 곡 구성과 사운드 메이킹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지금의 밴드 사운드를 완성한 일은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결심한 뒤입니다.
- '까만 그림' 채색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까맣게 그린 하늘처럼 소리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올리고 거기에 노랫말을 얹었습니다. 각각의 연주 파트는 힘있고 시끄럽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조화롭게 합해져 아주 차분한 단 한 장의 검은 그림처럼 느낄 수 있게 작업했습니다.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눈으로 보듯이 이 노래를 들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까만 그림' 완성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검은 배경에 까맣게 그린 그림을 알아보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소에 우리 모두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하지만 알아봐주길 바라고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겐들 없을까요. 그 애틋한 욕망과 서로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따뜻한 시선이 어두워가는 하늘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좀 더 알아보고, 알아채는 그런 음악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2월에 네 번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