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의 밤 [가을을 그리다]
서교동의 밤
선선하고 살랑이는 바람 부는 때를 기다려 서교동의 밤이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왔다. [가을을 그리다]. 이 가을 녘에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몽환적이고 따뜻한 음악을 다루었던 기존의 색깔에서 더 확장되고 넓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리듬과 멜로디는 RnB, 사운드는 Electric 음악, 분위기는 Ambient의 색이 주를 이루었던 이전 음악으로부터, 이번엔 한 장의 앨범에 담기 힘든 다양한 메시지와 장르를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 내에서 두 팔을 양쪽으로 길게 뻗어서 공기 중에 온몸을 자유로이 유영하듯, 일렉트릭 소울, 알앤비, 씨티팝, 발라드의 스토리를 써 내려 간다. 이는 오랫동안 서교동의 밤의 싱글이 아닌 앨범을 기다린 팬들에게 가을 녘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한껏 담아 내려 노력한 흔적들이다. 서교동의 밤에 의해서 그려진 ‘가을’, 곡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의 마음속 액자에 하나씩 하나씩 걸리게 될 것이다.
1. 안아줘요
누구나 어렵고 누구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시대에, 첫 번째로 담은 메시지는 ‘안아줘요’이다. 단 한 사람도 소중한 사람이 없는데, 하늘의 별보다 훨씬 귀한 존재인데, 작아져만 가고 무기력해지는 지금의 현실은 버텨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별빛처럼 늘 바라보는 서로를 기억해서 힘을 낼 수 있도록 ‘안아줘요’, ‘말해줘요’라는 가장 친밀하고 당연한 표현을 하길 원한다. ‘양평소년’은 10살밖에 안 된 소년이지만, 부드러운 미성과 표현법으로 곡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얼핏 마이클 잭슨의 ‘벤’이 연상되기도 하며, 팝송에 대한 그만의 음악적 해석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양평 소년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솔로 활동으로는 ‘널 사랑해’를 불러 히트시켰던 가수 ‘김정은’과 모자 관계인 것도 이런 표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 OH-A
‘OH-A’는 ‘City Girl City Boy’, ‘Dancing in the Moon’에 이은 서교동의 밤의 씨티팝 3번째 곡이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여름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다. 함께 음악을 듣고 손을 잡고 걸었던 따뜻한 여름의 추억을 가을의 시원한 바람 속에 눈을 감고 다시 그리고 있다. 씨티팝의 특징인 빅밴드 브라스와 고음의 스트링 선율이 다이나믹 편곡을 구성하고 있으며, 서교동의 밤의 특징인 엠비언트 신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요즘 음악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간주 솔로 역시 더욱 음악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데, 서교동의 밤이 가진 음악적 토대가 재즈에서 시작되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보컬 ‘경빈’은 앳되고 차분한 창법으로 부끄러운 듯 추억을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을 읽어 내려간다. 그녀의 걸그룹 같은 외모와 제스쳐 역시 OH-A를 더욱 상큼한 음악,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씨티 팝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3. Killer
‘Killer’는 지난 4월 첫 곡을 선보인 신인 뮤지션 ‘황다빈’과의 콜라보를 통해 탄생한 곡이다. 서교동의 밤이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황다빈의 세련된 멜로디와 가사가 얹혀졌다. 리듬은 유러피안 EDM의 사운드가 강하지만 보이싱 악기와 믹싱의 방향은 아메리칸 Pop에 오히려 더 가깝다. 단단하게 뭉친 비트 위에 시원한 신스가 분위기를 형성하며, 다양한 보이스 이펙트들이 어지럽게 얽혀서 복잡한 감정을 격화시킨다. 다가가고 싶어도 감히 다가갈 수 없을 만큼 큰 사람, 모든 것은 그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내가 죽게 되는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적 감정, 상대방은 소위 ‘죽이는 사람’이지만, 나를 죽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정의 혼용은 곡의 구석마다 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바로 ‘You are my killer’라는 한 문장 때문에.
4.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역시 콜라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곡이다. 작년에 서교동의 밤의 곡에 피처링을 했으며 개인 싱글로 ‘Open your eyes’를 발매했던 ‘로기(ROGI)’가 참여했다. 로기의 이전 음악을 들어보면 그의 기본적인 음악은 록에서 출발한다. 읊조리는 창법도 특이하지만, 감정의 단면을 보여주어 한 순간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가사는 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번 곡 역시 멜로디와 가사를 직접 만들었으며 록뿐만 아니라 블루스적인 밴딩 보컬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서교동의 밤의 편곡은 약간의 바운스를 지닌 재즈/RnB 피아노, 힙합 드럼, 어지러운 리버스 악기들을 더해 로기의 보이스를 너무나 외롭게 만든다. 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외로움, 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 고립 됨에 나는 그냥 여기 서 있을 뿐이다. 그가 원하는 건 왜 거기 있는지, 누군가가 단 한 번만 물어봐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시 움직일 수 있을 텐데, 그러지조차 못하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가을의 곡이다.
5. 안아줘요
‘양평소년’의 ‘안아줘요’가 미성에 기대 애잔함과 애틋함이 있다면, ‘박차오름’이 부른 ‘안아줘요’는 진실됨이 더 강하다. 박차오름의 창법은 기존의 가요 창법과 거리가 있다. 그녀는 노래를 멀리 부른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진심을 소리의 크기가 아닌 소리의 깊이로 보여 준다. 마치 ‘사이렌’의 소리에 고개가 돌려지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쫑긋하듯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안아줘요’는 더 릴렉스되고 설득되는 측면이 있다. 두 가지 버전의 곡을 바로 연이어서 들어보는 것은 이번 앨범의 마무리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