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오수경 [데미안]
“너는 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소설 데미안 中-
2집 [파리의 숨결] 발매 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랫동안 파리에 머무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나 자신을 탐구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고 덕분에 긴 시간 고민해왔던 “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나는 이따위로 생겨먹은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 외로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름아닌 “인정”이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인정했더니 현재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해를 하고 나니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여 한 인간의 태어남, 성장함, 마주함의 과정을 음악으로 솔직하게 그려낸 이번 앨범은 서사적이며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듯 하지만 7년간 함께 해 온 멤버들 장수현, 지박, 고종성과 연주해서 살롱 드 오수경만의 사운드를 완성시킨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 곡 [아침]은 생명의 탄생과 기쁨, 생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서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 넘치는 느낌을 생동감있는 스트링 사운드를 통해 표현한 곡 입니다.
두번째 곡 [영 피아노]는 초등학생 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 이름입니다. 피아노와의 첫 만남, 그 생생했던 기억, 천사같았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날 반기던 특유의 가정적인 냄새, 이 모든 추억을 떠올리며 작곡한 짧은 피아노 연주곡 입니다.
이어지는 [정글북]은 팬티만 입고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지칠 줄 모르던 어린시절을 표현한 곡 입니다. 왜 어린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끊임없이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곡에는 쉼표가 없습니다. 바흐 인벤션 구조를 띄는 인트로가 점차 스패니쉬한 사운드로 변화되면서 아프로큐반 리듬으로 진화되는 과정을 통해 악보에 그려진대로 연주하는 걸 따분해하던 어린이가 피아노 학원을 탈출해 놀이터(정글)를 뛰어놀며 모험을 즐기는 과정을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하였습니다.
다음 트랙인 [울면서 달리기]는 늘 어딘가로 향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아침 6시면 억지로 일어나 학교를 향해 울면서 달려야 했던 사춘기 시절을 표현한 곡 입니다. A part에서는 메이저코드, B part에서는 마이너코드만 사용해서 작곡하였는데 이를 통해 사춘기 시절 오락가락 하던 감정선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목적이 있는 표류상태를 뜻하는 [유목적 표류]는 3집 수록곡들 중 가장 서사적인 성격을 띤 곡입니다. 20대 때 작곡해 둔 도입부를 수년간 잊고 살다가 30대가 되어서야 뒷 부분을 작곡해서 하나로 합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20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실패와 좌절을 반복했던 기억들 뿐 입니다. 그 과정은 너무나 지루하고 외로웠지만 계속 노를 저으며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죠. 첼리스트 지박이 연주하는 도입부 멜로디에 그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서른이 되던 해, 살롱 드 오수경 1집이 발매되었고 꿈은 이루었지만 알 수 없는 허무함으로 인해 도망치듯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5년간 파리에 머무르면서 내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마치 바다 한 가운데서 표류된 것 같았고 멤버들 또한 각자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인생의 배가 난파하는 듯한 혼란의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굳건해졌습니다. 파리가 아무리 좋아도 김치없이 밥 먹는게 괴로웠고 “한”이라는 정서가 없는 프랑스인들과 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한계점을 느낀 저는 멤버들이 있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난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후반부에 나오는 “아리랑”을 통해 이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미필적 고의]는 자신이 저지른 어떠한 행위로 말미암아 타인을 고통에 이르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죄를 짓는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 곡 입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습니다. 타인에게 들이댔던 거짓과 죄악의 칼날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하는 구조는 1집 뫼비우스와 사뭇 닮아있는 듯 합니다. 첼로, 바이올린, 베이스 순으로 연주되는 solo에서 멤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목빠지도록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죠. [목이 긴 여자]는 긴-긴-기다림에 따른 절망을 노래한 곡 입니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기대감이 절망으로 바뀌고 절망은 원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의 화살은 결국 스스로에게 꽂히더군요. 타고난 기질을 저주하며 다른 사람이 되보려 억지노력 해봐도 타인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고 2분15초부터 외치는 피맺힌 절규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기림님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나비’는 순수하고 어리숙한 자아이며 ‘바다’는 가혹한 현실을 의미합니다. 성인이 되기 전 바라보았던 세상은 꿈을 이룰 수 있는 드넓은 세계처럼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수심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발을 담구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차갑고 무서운 곳인지를…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이 차갑고 무서운 어른아이를 표현한 곡 입니다.
언젠간 찾아올 죽음의 문턱 앞에서 신에게 하고 싶은 말,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레미제라블]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인 싱클레어에게 절친 데미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는 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저희들에게 앨범을 만들어가는 작업은 자아를 깨달아가는 일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삶 이라는 고독한 들판에 서서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듯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만들어낸 이 앨범이 당신에게 데미안처럼 의미있는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